3S 정책은 1980년대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제5공화국 정부가 국민의 정치적 관심을 돌리고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시행한 우민화 정책이다. Screen(영화), Sports(스포츠), Sex(성)의 영문 첫 글자를 따서 명명되었으며, 이는 포르투갈의 '3F 정책(Fado, Fatima, Football)'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2·12 군사 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무력 진압을 통해 집권한 신군부 세력은 정권의 정당성 부족을 은폐하고 사회적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대중문화와 유흥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방식을 취했다.
영화(Screen) 부문에서는 컬러 TV 방송의 본격적인 보급과 영화 검열의 부분적 완화가 이루어졌다. 1980년 12월부터 시작된 컬러 TV 방송은 국민들에게 강력한 시각적 자극을 제공하며 대중 매체에 대한 몰입도를 높였다. 또한 영화 산업에서는 정치적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작품보다는 에로티시즘을 강조한 성인용 영화 제작이 활발해졌다. 이 시기에 '애마부인'과 같은 관능적인 영화들이 잇따라 흥행하며 대중이 사회적 모순보다는 감각적인 쾌락에 탐닉하도록 유도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스포츠(Sports) 부문에서는 프로 스포츠 리그의 출범과 대형 국제 스포츠 행사의 유치가 핵심이었다. 1982년 프로야구(KBO)가 출범하여 지역 연고제를 바탕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이어 프로축구와 프로씨름 등이 창설되었다. 아울러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 유치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했다. 정부는 이를 통해 국민적 자부심을 고취하는 동시에 정치적 비판의 목소리를 스포츠 경기에 대한 열기로 희석하려 시도했다.
성(Sex) 부문에서는 성 풍속에 대한 규제 완화와 야간 통행금지 해제가 주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1982년 1월, 해방 이후 37년간 유지되어 온 야간 통행금지가 전격 폐지되면서 심야 영업이 가능해졌고, 이는 유흥 산업의 급격한 팽창으로 이어졌다. 이와 함께 성인 영화의 수위가 높아지고 향락 산업이 확산되는 등 성을 상업화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정부는 이를 통해 청년 세대와 서민층이 정치적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기보다는 개인적인 유흥과 일탈에 몰두하게끔 유도했다.
3S 정책은 대중문화의 양적 팽창과 스포츠 산업의 현대화를 가져왔다는 측면도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독재 정권의 유지와 정당화를 위한 기만적인 통치 수단이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국민을 정치적으로 무관심하게 만드는 우민화 전략의 전형적인 사례로 평가되며, 이는 한국 현대사에서 권위주의 정권이 대중의 욕망과 여가를 어떻게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정책으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