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8년

338년은 율리우스력의 평년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오호십육국 시대의 혼란이 이어지고 있었으며, 특히 화북 지방의 패권을 둘러싼 국가 간의 충돌이 격화되었다. 이 해의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는 후조(後趙)와 전연(前燕) 사이의 대규모 전쟁이다. 후조의 군주 석호(石虎)는 대군을 이끌고 모용황(慕容皝)이 이끄는 전연을 공격했으나, 전연의 수도인 극성(棘城)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참패하며 퇴각했다. 이 전투의 승리로 전연은 요동 및 요서 지역에서 확고한 세력을 구축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중국 쓰촨성 일대에 자리 잡고 있던 성한(成漢)에서는 내부 정변이 발생했다. 이수(李壽)가 당시 군주였던 이기(李期)를 폐위시키고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이수는 즉위 후 국호를 '성(成)'에서 '한(漢)'으로 변경하여 권력을 공고히 하고자 했다. 한편, 강남에 위치한 동진(東晉)은 성제(成帝) 사마연이 통치하고 있었으며, 북방의 극심한 혼란을 관망하며 내부 결속과 국경 방어에 주력하던 시기였다.

한반도에서는 삼국시대가 전개되고 있었다. 고구려는 고국원왕이 다스리고 있었으며, 서쪽의 전연이 급격히 성장함에 따라 국경 지대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고구려는 전연의 팽창을 견제하고 국가의 방위를 강화하기 위해 외교적, 군사적 대비를 다져야만 했다. 백제는 비류왕 통치 후반기로 국가 체제를 정비하고 있었으며, 신라 역시 흘해 이사금이 다스리며 내치를 다지는 등 삼국 모두 비교적 안정된 내부 체제를 유지하며 주변국의 동태를 주시하고 있었다.

서양 및 중동 지역에서는 로마 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의 충돌이 본격화되었다. 전년도에 콘스탄티누스 1세가 사망한 후 로마 제국은 세 아들에 의해 분할 통치되고 있었는데, 제국 동방을 맡은 콘스탄티우스 2세는 페르시아의 위협에 직면했다.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푸르 2세(Shapur II)는 로마의 영토를 침공하여 메소포타미아의 주요 전략 도시인 니시비스(Nisibis)를 포위 공격했다. 비록 이 첫 번째 포위전은 로마군의 끈질긴 방어에 막혀 실패로 돌아갔으나, 이는 이후 수십 년간 이어질 양국 간 장기전의 서막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종교적 측면에서는 로마 제국 내 기독교 교리 논쟁이 여전히 정치사회적 화두였다. 니케아 공의회 이후에도 삼위일체론을 둘러싼 정통파와 아리우스파 간의 갈등은 종식되지 않았다. 338년경 아리우스파에 동조하던 니코메디아의 에우세비우스(Eusebius of Nicomedia)가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주교로 임명되면서, 제국 동부 지역에서 아리우스파의 정치적, 종교적 영향력이 다시금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당시 로마 제국의 종교 정책이 지역적 역학관계와 권력층의 성향에 따라 크게 요동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