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11월 21일 선언

1974년 11월 21일 선언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 독재에 항거하여 천주교 사제들이 중심이 되어 발표한 시국 선언으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공식적인 출범을 알린 사건이다. 서울 명동성당에서 거행된 '인권회복과 민주구국을 위한 기도회' 도중 발표된 이 선언은 한국 천주교회가 종교적 영역을 넘어 사회 정의와 인권 회복, 그리고 민주화 운동에 조직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한 역사적인 분기점이었다. 이 선언은 당시 엄혹했던 긴급조치 시대 상황 속에서 종교계가 정면으로 정권의 정당성에 이의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선언이 나오게 된 직접적인 배경은 1974년 발생한 민청학련 사건과 지학순 주교의 구속이었다. 당시 원주교구장이었던 지학순 주교는 유신 헌법의 무효를 주장하는 양심선언을 발표했다가 중앙정보부에 연행되어 징역 15년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다. 이에 반발하여 전국의 사제들과 신자들은 1974년 9월부터 시국 기도회를 열며 저항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산발적인 저항을 하나로 묶을 전국적인 조직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에 뜻을 같이하는 젊은 사제들이 주축이 되어 11월 21일 명동성당에 모여 사제단을 결성하고 첫 선언문을 낭독하게 된 것이다.

선언문의 주요 내용은 유신 헌법 철폐와 민주 헌정의 회복, 국민의 생존권과 기본권 보장, 긴급조치의 해제 및 구속된 민주 인사들의 즉각적인 석방 등을 포함하고 있다. 사제단은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을 유린하는 어떠한 법이나 체제에도 복종할 수 없다"고 선언하며, 신앙인의 양심에 따라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울 것을 결의했다. 이는 정교분리 원칙을 고수하며 사회 문제에 침묵하던 기존 교회의 보수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불의에 저항하는 예언자적 직무를 수행하겠다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실천에 옮긴 것으로 해석된다.

이 선언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출범은 한국 민주화 운동의 지형을 크게 변화시켰다. 이전까지 학생과 일부 재야 지식인들이 주도하던 반독재 투쟁에 도덕적 권위를 가진 종교계가 가세함으로써 운동의 정당성과 대중적 파급력이 획기적으로 확장되었다. 특히 명동성당은 이후 1987년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공권력이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민주화 운동의 성지이자 피난처로서 상징적인 지위를 확립하게 되었다.

1974년 11월 21일 선언은 단발성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국면마다 사제단의 목소리를 내는 시발점이 되었다. 사제단은 이후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 알리기, 1982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관련자 보호, 그리고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조작 폭로 등 결정적인 순간마다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다. 따라서 이 선언은 한국 사회에서 종교가 수행해야 할 사회적 책임과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중요한 기준점을 제시한 사건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