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

1936년 11월 3일에 치러진 제37대 미국 대통령 선거는 민주당의 현직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즈벨트와 공화당 후보 앨프 랜던 캔자스 주지사 간의 대결이었다. 이 선거는 대공황의 절정기에서 치러졌으며, 루즈벨트 행정부가 1기 임기 동안 추진했던 '뉴딜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임 투표 성격이 강했다. 선거 결과는 루즈벨트의 역사적인 압승으로 끝났으며, 이는 미국 대통령 선거 역사상 가장 큰 표 차이로 기록된 선거 중 하나이자 민주당 장기 집권의 기반을 닦은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민주당은 전당대회에서 이견 없이 루즈벨트를 대통령 후보로, 존 낸스 가너를 부통령 후보로 재지명했다. 루즈벨트 캠프는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뉴딜 정책의 성과를 전면에 내세웠으며, 사회보장제도 확립과 실업 구제 등 정부의 적극적인 경제 개입을 옹호했다. 이에 맞선 공화당은 비교적 온건한 성향의 앨프 랜던을 후보로 선출했다. 공화당은 뉴딜 정책이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고 있으며, 과도한 재정 지출과 관료주의적 비효율성을 초래해 미국의 자유 기업 시스템을 위협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랜던은 뉴딜 정책의 일부 목표에는 동의하는 입장을 취해 공화당 강경파와 민주당 지지층 양쪽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이 선거는 여론조사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당시 권위 있는 잡지였던 《리터러리 다이제스트》는 자동차 등록부와 전화번호부를 기반으로 한 대규모 우편 설문조사를 통해 랜던의 승리를 예측했다. 그러나 이는 당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던 계층에 편중된 표본 추출 방식의 치명적인 오류였다. 반면, 조지 갤럽은 과학적인 할당 표본 추출 방식을 도입하여 적은 표본으로도 루즈벨트의 승리를 정확하게 예측했다. 선거 결과 갤럽의 예측이 적중하면서 《리터러리 다이제스트》는 폐간 위기를 맞았고, 현대적인 여론조사 기법이 자리를 잡는 계기가 되었다.

개표 결과는 루즈벨트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루즈벨트는 전체 선거인단 531명 중 무려 523명을 확보한 반면, 랜던은 고작 8명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랜던이 승리한 주는 메인주와 버몬트주 두 곳뿐이었으며, 나머지 46개 주는 모두 루즈벨트를 선택했다. 일반 득표율에서도 루즈벨트는 60.8%를 기록하여 36.5%에 그친 랜던을 크게 앞섰다. 과거 "메인주가 가는 대로 국가가 간다"라는 정치적 속설이 있었으나, 이 선거 이후 민주당 선거대책본부장 제임스 팔리는 "메인주가 가는 대로 버몬트주가 간다"라고 비꼬아 말하기도 했다.

1936년 선거는 미국 정치 지형을 근본적으로 재편한 '뉴딜 연합(New Deal Coalition)'의 완성을 의미했다. 노동조합, 도시 거주민, 남부 백인, 농민, 지식인, 그리고 전통적으로 공화당을 지지했던 흑인 유권자들이 대거 민주당 지지로 돌아서면서 강력한 다수파 연합이 형성되었다. 특히 링컨의 당이라며 공화당을 지지하던 흑인 유권자들이 민주당으로 이동한 것은 미국 정당사에서 중대한 변화였다. 이러한 압도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루즈벨트는 2기 행정부에서 뉴딜 정책을 더욱 강력하게 추진할 동력을 얻었으며, 민주당은 이후 수십 년간 의회와 백악관을 장악하는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