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5

1915년은 제1차 세계 대전이 전 유럽으로 확산되며 참혹한 양상을 띠기 시작한 해이다. 전선은 교착 상태에 빠졌고, 참호전이 본격화되었다. 특히 4월에 발생한 제2차 이프르 전투에서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대규모 독가스 공격이 가해져 전쟁의 양상이 극도로 잔인해졌다. 독일군은 염소가스를 살포하여 연합군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며, 이는 이후 화학전이 전쟁의 일반적인 수단으로 자리 잡게 되는 시발점이 되었다.

해상과 중동 지역에서도 중요한 사건이 잇따랐다. 5월, 독일 잠수함 U-보트가 영국의 여객선 루시타니아호를 격침시켜 미국인 128명을 포함한 수많은 민간인이 사망했다. 이 사건은 당시 중립을 지키던 미국의 여론을 반독일로 돌아서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한편, 오스만 제국의 갈리폴리반도에서는 영국과 프랑스 등 연합군이 대규모 상륙 작전을 펼쳤으나 오스만군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막대한 인명 피해를 내고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정치적 측면에서는 이탈리아가 중립을 깨고 연합군 측에 가담하며 전선이 더욱 확대되었다. 이탈리아는 런던 밀약을 통해 영토 할양을 약속받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선전포고를 했다. 또한, 1915년은 오스만 제국 내에서 아르메니아인들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학살이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이는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제노사이드 중 하나로 기록되며, 오늘날까지도 국제 정치에서 민감한 쟁점으로 남아 있다.

과학 분야에서는 인류의 우주관을 바꾼 획기적인 진전이 있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11월에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여 중력을 시공간의 곡률로 설명하는 새로운 물리 법칙을 제시했다. 또한 알프레트 베게너는 저서 '대륙과 해양의 기원'을 통해 대륙이동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발표했다. 이러한 성과들은 근대 과학의 지평을 넓히고 현대 물리학과 지질학의 기초를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동아시아에서는 일본 제국주의의 야욕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일본은 중국의 위안스카이 정부에 21개조 요구를 강요하여 만주와 산둥반도 등에서의 이권을 확보하려 했다. 일본의 식민 지배하에 있던 조선에서는 무단 통치가 강화되는 가운데서도 국권 회복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었다. 박상진 등이 결성한 대한광복회는 무장 독립 투쟁의 기반을 닦았으며, 교육과 산업을 통한 실력 양성 운동도 비밀리에 전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