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3년은 유럽사에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몰락이 가속화된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전년도 러시아 원정에서 참패한 나폴레옹에 맞서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영국 등이 제6차 대불동맹을 결성하였다. 프랑스군은 뤼첸 전투와 바우첸 전투에서 초기에 승리를 거두기도 했으나, 동맹군의 거센 반격과 내부적인 전력 손실로 인해 점차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이 해의 가장 중요한 군사적 사건은 10월 16일부터 19일까지 발생한 라이프치히 전투이다. '제국민 전투'라고도 불리는 이 교전은 나폴레옹 전쟁 중 가장 규모가 컸던 전투로, 프랑스군과 대불동맹군이 격돌하여 프랑스가 치명적인 패배를 당했다. 이 전투의 결과로 나폴레옹의 독일 지배가 종식되었으며, 프랑스군은 라인강 서쪽으로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이듬해 나폴레옹의 퇴위와 엘바섬 유배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북미 대륙에서는 미국과 영국 사이의 1812년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1813년 9월, 이리호 전투에서 올리버 해저드 페리 제독이 이끄는 미국 해군이 영국 함대를 격파하며 오대호 지역의 통제권을 장악했다. 또한 10월에는 템스 전투에서 미국군이 영국군과 테쿰세가 이끄는 원주민 연합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으며, 이 과정에서 원주민 지도자 테쿰세가 전사하며 원주민 저항 세력이 약화되었다.
조선 왕조에서는 순조 13년에 해당하며, 홍경래의 난(1811년) 이후 사회적 불안이 지속되던 시기였다. 정부는 난의 여파를 수습하고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삼정의 문란과 같은 구조적인 모순은 해결되지 않았다. 특히 이해에는 극심한 기근과 재해로 인해 농민들의 삶이 더욱 피폐해졌으며, 이는 향후 19세기에 빈번하게 발생하게 될 대규모 민란의 사회적 배경이 되었다.
문화 및 과학 분야에서도 중요한 사건들이 있었다. 1813년 1월, 영국에서는 제인 오스틴의 대표작인 소설 '오만과 편견'이 출판되어 세계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음악계에서는 독일의 리하르트 바그너와 이탈리아의 주세페 베르디라는 두 거장 작곡가가 이해에 탄생하였다. 과학 분야에서는 스웨덴의 화학자 옌스 야코브 베르셀리우스가 오늘날 사용되는 알파벳 기반의 원소 기호 체계를 제안하여 근대 화학의 기틀을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