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2년은 신라 헌덕왕 4년에 해당하는 해로, 한반도 전역에 극심한 기근이 발생하여 사회적 혼란이 가중된 시기였다. 신라 본기에 따르면 이해 겨울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림에 허덕이자, 헌덕왕은 주와 군에 사자를 보내 창고의 곡식을 풀어 백성들을 구휼하게 하였다. 이는 당시 신라가 겪고 있던 자연재해와 경제적 어려움을 보여주는 지표이며, 왕실 차원의 적극적인 구제 노력이 뒤따랐음을 의미한다.
유럽에서는 서유럽의 프랑크 왕국과 동로마 제국(비잔티움 제국) 사이의 해묵은 갈등이 일단락되는 아헨 조약이 체결되었다.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미카엘 1세 랑가베는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 대제를 '황제(Basileus)'로 공식 승인하였다. 이로써 카롤루스는 서방 황제로서의 정통성을 대외적으로 인정받게 되었으며, 그 대가로 베네치아와 달마티아 해안 도시들에 대한 영유권을 비잔티움 제국에 양도하였다.
이슬람 세계인 아바스 왕조에서는 칼리파 자리를 두고 알 아민과 알 마문 형제 사이에서 벌어진 내전인 제4차 피트나가 절정에 달했다. 알 마문의 장군 타히르 이븐 후사인이 이끄는 군대는 알 아민의 근거지인 바그다드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이 내전은 단순한 형제간의 권력 다툼을 넘어, 아랍계 중심 세력과 페르시아계 지지 세력 간의 충돌이라는 사회적 배경을 담고 있었으며 이후 왕조의 권력 구조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발칸 반도에서는 불가리아 제국의 칸 크룸이 비잔티움 제국에 대한 대규모 공세를 이어갔다. 크룸은 비잔티움의 주요 요충지인 데벨투스를 점령하고 성벽을 파괴했으며, 거주민들을 불가리아 영토 내부로 강제 이주시키는 정책을 폈다. 이러한 불가리아의 팽창은 비잔티움 제국에 심각한 안보 위협이 되었으며, 양국 간의 치열한 영토 분쟁은 한층 격화되었다.
일본에서는 사가 천황이 재위 중이었으며, 헤이안 시대 초기의 정치적 기틀을 다지는 시기였다. 812년에는 헤이안쿄 내에서 문인들을 중심으로 한 한시 작법이 장려되는 등 당풍 문화의 수용과 토착화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또한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율령 체제의 정비와 지방 행정 관리에 대한 감찰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