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0년대

1780년대는 세계사적으로 절대왕정이 흔들리고 근대 민주주의와 국민 국가의 싹이 트기 시작한 격동의 시기였다. 계몽주의 사상이 정치적, 사회적 변혁의 원동력으로 작용했으며, 아메리카와 유럽 대륙에서 연이어 발생한 혁명은 기존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이 시기에 촉발된 정치적 격변과 산업의 발전은 이후 19세기 세계 질서를 형성하는 결정적인 토대가 되었다.

북아메리카에서는 미국 독립 전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며 새로운 국가가 탄생했다. 1781년 요크타운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 아메리카 식민지군은 1783년 파리 조약을 통해 영국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이후 1787년 필라델피아에서 제헌 회의가 열려 연방주의에 입각한 미국 헌법이 제정되었고, 1789년에는 조지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며 세계 최초의 근대적 성문 헌법을 가진 민주 공화국이 출범하였다.

유럽에서는 1780년대 말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하여 봉건적 질서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극심한 재정 적자와 흉작, 그리고 불평등한 신분제인 앙시앵 레짐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하면서 1789년 7월 14일 파리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다. 혁명 세력은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인권선언)'을 채택하여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천명했으며, 이는 전 유럽으로 민주주의 사상이 확산되는 기폭제가 되었다. 한편, 영국에서는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개량 등을 바탕으로 산업혁명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며 기계 공업과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동아시아의 조선은 정조의 치세 아래 정치적 안정과 문화적 중흥을 맞이한 시기였다. 정조는 규장각을 중심으로 젊고 유능한 학자들을 양성했으며, 실학이 융성하여 농업, 상공업, 과학 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가 제도를 개혁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일어났다. 또한 이 시기는 서양의 학문과 종교가 본격적으로 유입된 때이기도 하다. 1784년 이승훈이 베이징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오면서 조선에 천주교(서학)가 최초로 전래되었고, 이는 훗날 조선 사회의 사상적 갈등과 굵직한 변화를 야기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웃한 일본과 중국 역시 각자의 시대적 변화와 위기를 겪고 있었다. 일본 에도 막부에서는 1783년 아사마산 대분화 등 자연재해로 인해 극심한 '텐메이 대기근'이 발생하여 심각한 사회적, 경제적 위기에 직면했다. 중국 청나라는 건륭제의 통치 후반기로, 겉으로는 제국의 최대 판도를 유지하며 번영을 누렸으나 내면적으로는 관료 사회의 부패와 급격한 인구 증가로 인한 쇠퇴의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편 서구 과학 분야에서는 1781년 영국의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이 천왕성을 발견함으로써 고대 이래로 유지되던 태양계의 우주적 경계를 확장하는 등 인류의 인식 지평이 크게 넓어진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