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2년

1722년은 조선 제20대 국왕 경종 재위 2년째 되는 해로, 조선 조정에서는 치열한 당쟁의 결과인 신임사화(辛壬士禍)가 절정에 달했다. 전년도인 1721년부터 시작된 이 정치적 숙청은 소론이 노론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일으킨 사건이다. 이해에 노론의 영수였던 김창집, 이이명, 이건명, 조태채 등 이른바 노론 사대신이 사사되거나 처형되었으며, 수많은 노론 인사들이 유배되거나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 사건은 당파 간의 갈등이 단순한 정책 대립을 넘어 생사를 건 권력 투쟁으로 변질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는다.

동아시아 전체적으로는 청나라에서 중대한 권력 교체가 일어난 해였다. 청의 전성기인 강건성세를 열었던 제4대 황제 강희제가 재위 61년 만에 북경 창춘원에서 서거했다. 강희제의 뒤를 이어 그의 넷째 아들인 윤진이 옹정제로 즉위했다. 옹정제는 즉위 직후부터 황권 강화를 위해 강력한 중앙집권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으며, 이는 청나라의 행정 시스템을 정비하고 국가 재정을 확충하는 기틀이 되었다. 옹정제의 즉위는 청나라가 전성기를 유지하고 내치를 공고히 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유럽의 탐험 역사 측면에서는 네덜란드의 탐험가 야코프 로헤베인(Jacob Roggeveen)에 의해 이스터 섬이 발견되었다. 1722년 4월 5일, 부활절 일요일에 태평양을 항해하던 로헤베인 탐험대는 한 섬을 발견하고 이를 '이스터 섬(Easter Island)'이라 명명했다. 이 발견을 통해 섬 곳곳에 세워진 거대 석상인 모아이(Moai)의 존재가 서구 세계에 처음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는 인류학 및 고고학 연구에 있어 지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러시아 제국과 서남아시아에서도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는 국가 관료 체계를 혁신하기 위해 '관등표(Table of Ranks)'를 제정했다. 이는 가문의 혈통이나 배경보다는 개인의 능력과 복무 실적에 따라 관등을 부여하는 제도로, 러시아가 근대적인 관료 국가로 나아가는 토대를 마련했다. 한편, 서남아시아에서는 아프가니스탄의 호타키 왕조가 사파비 왕조의 수도 이스파한을 점령하면서 오랜 기간 번영했던 사파비 왕조가 사실상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예술과 문화 분야에서는 독일의 작곡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음악사에 길이 남을 걸작인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제1권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모든 조성을 사용하여 작곡된 전주곡과 푸가로 구성되어 있으며, 당시 보급되기 시작한 평균율 조율법의 가능성을 증명한 기념비적인 저작이다. 바흐의 이 성과는 서양 고전 음악의 화성 체계와 작곡 기법 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으며 후대 음악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