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0년은 17세기 중반에 해당하는 해로, 그레고리력으로는 일요일에 시작하는 윤년이다. 동양사에서는 명나라 말기이자 청나라의 중원 장악이 가속화되던 시기였고, 조선에서는 인조 18년에 해당한다. 서양사에서는 30년 전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각국의 정치적 갈등이 폭발하여 근대적 체제로 나아가는 과도기적 사건들이 다수 발생한 해로 기록된다.
조선 왕조의 역사에서 1640년은 병자호란의 패배 이후 청나라의 내정 간섭과 군사적 압박이 극심했던 시기다. 당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청나라의 수도 심양에 볼모로 잡혀 있었으며, 청나라는 명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조선에 지속적으로 물자와 병력 지원을 요구했다. 이해에는 청나라의 강요로 임경업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명나라를 치기 위해 출병했으나, 명나라와의 의리를 중시했던 임경업은 고의로 전투에 소극적으로 임하거나 명나라 군에 정보를 제공하는 등 복잡한 외교적 줄타기를 벌였다.
유럽에서는 스페인 제국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새로운 국가 질서가 형성되는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12월 1일, 포르투갈에서는 스페인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에 반대하는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켜 브라간사 공작을 주앙 4세로 추대했다. 이 사건으로 포르투갈 왕정 복고 전쟁이 시작되었으며, 1580년부터 60년간 지속되었던 이베리아 연합(스페인-포르투갈 동군연합)이 사실상 해체되었다. 카탈루냐 지방에서도 수확인 전쟁(Reapers' War)이라 불리는 대규모 봉기가 일어나 스페인 왕실의 권위는 크게 실추되었다.
영국 역사에서도 1640년은 잉글랜드 내전(청교도 혁명)의 서막이 오른 해로 평가받는다. 찰스 1세는 스코틀랜드와의 전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4월에 단기 의회를 소집했으나 의원들의 반대로 3주 만에 해산시켰다. 그러나 재정 위기가 해결되지 않자 같은 해 11월 다시 의회를 소집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1653년까지 이어진 '장기 의회'의 시작이다. 장기 의회는 국왕의 전제 정치를 강하게 비판하며 왕권과 의회 권력 간의 정면충돌을 야기했고, 이는 훗날 찰스 1세의 처형과 공화정 수립으로 이어지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문화 및 학술 분야에서도 의미 있는 기록들이 남겨졌다. 북아메리카 식민지에서는 영문학적 가치를 지닌 최초의 인쇄물인 '베이 시편서(Bay Psalm Book)'가 매사추세츠만 식민지에서 출판되었다. 이는 미국 인쇄 및 출판 역사의 시초로 간주된다. 미술계에서는 바로크 미술을 대표하는 거장 페테르 파울 루벤스가 5월 30일 사망하여 한 시대가 저물었다. 한편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변호사였던 피에르 드 페르마는 정수론 분야에서 중요한 정리들을 연구하고 있었으며, 파스칼은 16세의 나이에 사영기하학에 관한 논문인 '원추곡선 시론'을 발표하여 천재성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