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8년

1578년은 16세기의 78번째 해로, 율리우스력으로는 수요일에 시작하는 평년이다. 육십갑자로는 무인년(戊寅年)으로 호랑이의 해에 해당한다. 동양에서는 조선 선조 11년, 명나라 만력 6년, 일본 덴쇼 6년에 해당하며, 서양에서는 대항해시대와 종교 개혁의 여파가 지속되던 시기이다. 이 해는 특히 유럽의 이베리아반도와 일본의 센고쿠 시대 정세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건들이 발생한 해로 기록된다.

유럽 역사, 특히 포르투갈사에서 1578년은 국가의 운명이 뒤바뀐 비극적인 해였다. 포르투갈의 젊은 국왕 세바스티앙 1세는 십자군 정신에 심취하여 무리하게 북아프리카 모로코 원정을 감행했다. 그러나 8월 4일 벌어진 알카세르키비르 전투(일명 세 왕의 전투)에서 포르투갈 군은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했고, 세바스티앙 1세마저 전사했다. 국왕이 후사 없이 사망함에 따라 포르투갈은 심각한 왕위 계승 분쟁에 휘말리게 되었으며, 이는 2년 후인 1580년에 스페인의 펠리페 2세가 포르투갈을 병합하여 이베리아 연합이 형성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일본의 센고쿠 시대 역사에서도 세력 판도가 급변한 해였다. 오다 노부나가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자 '에치고의 용'으로 불리던 우에스기 겐신이 3월에 급작스럽게 병사했다. 겐신의 죽음으로 오다 포위망의 한 축이 무너졌으며, 우에스기 가문 내부에서는 후계자 다툼인 '오타테의 난'이 발생하여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또한 11월에는 오다 수군과 모리 수군이 격돌한 제2차 기즈가와구치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오다 군은 철판으로 장갑을 보강한 대형 전함을 동원하여 모리 수군을 격파하고 제해권을 장악함으로써 천하통일의 기반을 다졌다. 규슈 지방에서는 미미가와 전투가 발생하여 시마즈 가문이 오토모 가문을 궤멸시키고 규슈 남부의 패권을 확립했다.

종교 및 문화사적으로는 로마에서 초기 기독교의 유적이 재발견된 해이기도 하다. 5월 31일, 로마의 비아 살라리아(Via Salaria)에서 작업 중이던 인부들에 의해 우연히 지하 묘지인 카타콤이 발견되었다. 오랫동안 잊혔던 이 거대한 지하 무덤의 발견은 당시 프로테스탄트의 종교 개혁에 맞서 가톨릭교회의 정통성과 초기 순교자들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기독교 고고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태동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인물사적으로는 근대 의학의 선구자인 윌리엄 하비가 4월 1일 잉글랜드 켄트주에서 태어났다. 하비는 훗날 심장의 펌프 작용을 통해 혈액이 체내를 순환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체계적으로 입증하여 생리학의 혁명을 일으킨 인물이다. 한편 조선에서는 선조 11년에 해당하며, 사림파가 조정의 주도권을 잡은 가운데 동인과 서인 간의 붕당 정치가 본격화되며 정치적 긴장이 고조되던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