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2년은 조선 중종 37년에 해당하는 해로, 한국 유학 및 교육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된 시기다. 이해에 풍기 군수 주세붕이 고려 후기의 학자 안향을 배향하고 유학을 진흥하기 위해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건립했다. 이는 조선에 세워진 최초의 서원으로, 훗날 퇴계 이황의 건의에 의해 명종으로부터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사액을 받게 된다. 백운동서원의 설립은 조선 사회에 향촌 사림의 교육 및 교화 거점이 마련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조선 전역에 서원이 폭발적으로 건립되는 신호탄이 되었다.
이웃한 명나라에서는 가정제(嘉靖帝) 통치기에 전대미문의 황제 암살 미수 사건인 '임인궁변(壬寅宮變)'이 발생했다. 1542년 10월, 가정제의 가혹한 노동 착취와 도교 도술에 대한 광적인 집착에 앙심을 품은 양금영 등 십여 명의 궁녀들이 황제가 잠든 틈을 타 밧줄로 목을 졸라 암살을 시도했다. 이 사건은 황후의 개입으로 비록 미수에 그쳤으나, 절대 권력을 쥔 황제가 궁궐 깊숙한 곳에서 궁녀들에게 암살당할 뻔했다는 점에서 명나라 황실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황제의 권위와 통치력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유럽에서는 종교적, 정치적 격변이 이어졌다. 1542년 7월, 교황 바오로 3세는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는 종교개혁에 맞서 가톨릭의 정통성을 수호하기 위해 로마 이단심문소(Roman Inquisition)를 설립했다. 이는 가톨릭 국가 내에서 개신교도들을 탄압하고 사상을 통제하는 핵심 기구로 작동했다. 한편 잉글랜드에서는 국왕 헨리 8세의 다섯 번째 왕비인 캐서린 하워드가 간통 혐의로 참수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스코틀랜드에서는 12월 8일에 태어난 메리 스튜어트가 생후 6일 만에 아버지 제임스 5세의 뒤를 이어 스코틀랜드의 여왕(메리 1세)으로 즉위하는 등 유럽 왕실 내에 큰 권력 변화가 있었다.
대항해시대의 연장선상에서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유럽인들의 탐험과 제도적 정비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스페인의 탐험가 프란시스코 데 오레야나는 안데스산맥에서 출발해 아마존 강을 최초로 완주하며 유럽에 아마존의 존재를 널리 알렸다. 또한, 후안 로드리게스 카브리요는 유럽인 최초로 현재의 미국 캘리포니아 해안(샌디에이고) 지역을 탐험했다. 같은 해 11월,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1세는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 신부 등의 비판을 수용하여 아메리카 원주민의 노예화를 금지하고 그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신법(Leyes Nuevas)'을 반포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1542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적 변곡점이 되는 다양한 사건들이 일어난 해였다. 조선에서는 성리학적 향촌 질서의 토대가 되는 서원이 처음 등장해 지성사의 흐름이 바뀌었고, 명나라에서는 황실의 부패와 위기가 궁변으로 표출되었다. 유럽과 아메리카에서는 종교적 갈등에 따른 통제 기구의 신설과 더불어 신대륙 탐험이 가속화되었으며, 식민지 원주민 인권에 대한 초기 형태의 제도적 고민이 법제화되는 등 정치, 종교, 지리적 확장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전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