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1년은 16세기의 주요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여 세계사에 큰 획을 그은 해이다. 유럽 중심의 대항해시대가 절정에 달하며 신대륙과 구대륙의 교류 및 물리적 충돌이 본격화되었다. 동시에 유럽 내부에서는 종교 개혁의 불길이 거세지며 로마 가톨릭 교회의 권위에 대한 전면적인 도전이 이루어졌다. 아시아에서도 주요 왕조들의 정치적 변화가 나타나는 등 전 지구적으로 중대한 역사적 전환기를 맞이한 시기였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에르난 코르테스가 이끄는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아스텍 제국이 멸망했다. 1519년부터 아스텍 제국을 공격해 온 코르테스 일행은 아스텍에 반감을 품은 주변 원주민 동맹군의 지원과 유럽에서 유입된 천연두 등 전염병의 확산에 힘입어 1521년 8월 13일, 아스텍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을 최종적으로 함락시켰다. 이 사건은 메소아메리카 지역에 스페인의 식민 지배가 확립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 문명이 파괴되고 유럽의 문화와 제도가 이식되는 결과를 낳았다.
태평양 일대에서는 페르디난드 마젤란의 함대가 필리핀에 도달하며 역사적인 사건을 남겼다. 스페인의 후원을 받아 향료 제도를 찾기 위해 서쪽으로 항해하던 마젤란은 1521년 3월 필리핀 군도에 상륙했다. 그는 지역 부족들에게 스페인 국왕에 대한 복종과 기독교로의 개종을 강요했으나, 막탄섬의 족장 라푸라푸가 이에 강하게 저항했다. 결국 4월 27일 벌어진 막탄 전투에서 마젤란은 원주민들의 공격을 받고 전사했다. 지휘관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남은 선원들은 항해를 계속하여 이듬해 스페인으로 귀환함으로써 인류 최초의 세계 일주를 완수하게 된다.
유럽 대륙에서는 마르틴 루터가 촉발한 종교 개혁이 중대한 분기점을 맞이했다. 1521년 1월, 교황 레오 10세는 루터의 주장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그를 가톨릭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파문했다. 이어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는 보름스 제국 의회를 소집하여 루터에게 자신의 주장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으나, 루터는 신앙 양심을 이유로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이에 황제는 5월 보름스 칙령을 내려 루터를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이단자로 선고했다. 루터는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의 은밀한 보호 아래 바르트부르크 성에 숨어 라틴어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는 작업에 착수했고, 이는 훗날 개신교의 확산과 독일어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정치적 격변과 권력 교체가 일어났다. 조선은 중종 16년으로, 1519년에 발생한 기묘사화의 여파가 지속되며 조광조를 비롯한 신진 사림파가 크게 위축되고 훈구파가 정국을 주도하던 침체기였다. 한편 명나라에서는 1521년 4월, 국정을 방치하고 기행을 일삼던 정덕제가 후사 없이 붕어했다. 이에 그의 사촌인 주후총이 황위를 이어받아 가정제로 즉위했다. 가정제 시대의 개막은 정덕제 시기의 혼란을 수습하려는 시도와 함께 시작되었으나, 훗날 친부의 추존 문제를 둘러싼 대례의 옥과 같은 정치적 논쟁을 촉발하며 명나라 정치사에 새로운 파장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