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1

1521년은 유럽 종교개혁의 역사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 해였다.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5세는 보름스 국회를 소집하여 마르틴 루터를 소환했다. 루터는 이 자리에서 자신의 저술과 주장을 철회하라는 압박을 받았으나, 성서의 근거 없이는 굴복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 결과 5월 25일 보름스 칙령이 공포되어 루터는 법적 보호를 박탈당한 이단자로 선포되었고, 이는 가톨릭교회와 개신교 세력이 완전히 결별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항해 시대의 관점에서 1521년은 인류 최초의 세계 일주가 중대한 국면을 맞이한 시기였다.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이끄는 스페인 함대는 태평양을 횡단한 끝에 필리핀 제도에 도달했다. 그러나 4월 27일, 마젤란은 막탄 섬의 추장 라푸라푸가 이끄는 원주민들과의 전투에서 전사했다. 지휘관을 잃은 함대는 후안 세바스티안 엘카노의 지휘 아래 항해를 계속했으며, 이 여정은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증명하는 토대가 되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아즈텍 제국이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멸망했다. 에르난 코르테스가 이끄는 스페인 군대는 원주민 동맹군과 합세하여 아즈텍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을 수개월 동안 포위 공격했다. 8월 13일, 마지막 황제 쿠아우테목이 생포되면서 테노치티틀란은 완전히 함락되었고 아즈텍 제국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 사건은 중앙아메리카에서 스페인의 식민 지배가 본격화되는 시발점이 되었으며, 구대륙과 신대륙의 문명이 충돌하고 융합되는 과정을 가속화했다.

동유럽과 근동 지역에서는 오스만 제국의 팽창이 가속화되었다. 술레이만 1세가 이끄는 오스만 군대는 8월 29일 헝가리 왕국의 요충지였던 베오그라드를 점령했다. 베오그라드의 함락은 기독교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오스만 제국이 중부 유럽으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해주었다. 이로 인해 합스부르크 왕가를 비롯한 유럽 제국들은 오스만 제국의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고, 이후 수세기 동안 이어질 동서양의 군사적 대립 구도가 형성되었다.

이 외에도 1521년은 유럽 내 권력 투쟁이 심화된 해였다.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와 신성 로마 제국의 카를 5세 사이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이탈리아 전쟁이 발발했다. 또한 12월에는 교황 레오 10세가 타계하며 로마 가톨릭 내부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처럼 1521년은 종교, 지리, 정치 전반에 걸쳐 중세 질서가 해체되고 근대 초기 세계의 기틀이 마련된 격동의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