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6년은 율리우스력으로 화요일에 시작하는 평년이다. 13세기 후반에 해당하는 이 시기는 전 지구적으로 몽골 제국의 패권이 강력하게 유지되던 때였으며, 유럽에서는 중세 성기의 끝자락이자 십자군 전쟁의 열기가 점차 식어가는 시기였다. 동양과 서양은 각자의 정치적 격변을 겪고 있었으며, 특히 유라시아 대륙 전역은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의 영향 아래 교역과 문화 교류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일어나는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동아시아에서는 원나라의 세조 쿠빌라이 칸이 중국 대륙을 통일하고 강력한 제국을 경영하고 있었다. 한반도의 고려는 제25대 국왕인 충렬왕이 재위하던 시기로, 원나라의 내정 간섭이 본격화되고 심화되던 원 간섭기에 해당한다. 1286년 당시 고려는 원나라의 요구에 따라 각종 물자와 인력을 공출해야 하는 무거운 부담을 안고 있었으며, 조정 내부에서도 친원 세력의 권력이 비대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 시기 고려는 원나라의 부마국으로서의 정치적 지위를 굳히는 한편, 변발이나 호복 같은 몽골풍의 풍습이 고려 사회 지배층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사회·문화적 변용을 겪었다.
유럽 역사에서 1286년의 가장 중대한 사건은 스코틀랜드 국왕 알렉산더 3세의 급사이다. 3월 19일, 알렉산더 3세는 악천후 속에서 아내를 만나기 위해 킹혼(Kinghorn)으로 말을 타고 가던 중 어둠 속에서 절벽 아래로 추락하여 사망했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스코틀랜드 정치에 심각한 왕위 계승 위기를 불러왔다. 국왕의 직계 남성 후계자가 모두 사망한 상태였기 때문에, 노르웨이에 있던 어린 외손녀인 '노르웨이의 영애(Maid of Norway)' 마거릿이 스코틀랜드의 여왕으로 추대되었다. 이 사건은 훗날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가 스코틀랜드 왕위 계승 문제에 개입하게 되는 결정적 빌미를 제공하였고, 결국 제1차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도화선이 되었다.
같은 시기 서유럽과 중동 지역에서도 다양한 정치적 움직임이 일어났다. 프랑스에서는 카페 왕조의 필리프 4세가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으로,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국가의 중앙집권화를 추진하고 재정을 확충하기 위한 기반을 다지고 있었다. 신성 로마 제국에서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대공위 시대를 종식시킨 루돌프 1세가 제국 내부의 제후들을 견제하며 왕조의 안정을 도모하고 있었다. 중동 지역에서는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가 칼라운(Qalawun) 술탄의 영도 아래 레반트 지역에 남아있던 십자군 국가들의 잔존 세력을 강하게 압박하며 이슬람 세력의 주도권을 공고히 하고 있었다.
1286년을 전후한 13세기 후반은 세계사적으로 교역과 지성사 측면에서 중요한 축이 형성된 시기이기도 하다. 몽골 제국이 유라시아 대륙의 광대한 영역을 통일하면서 정비된 역참 제도는 동서양의 육상 무역로인 실크로드를 통한 상업적 교류를 전례 없이 활발하게 만들었다. 유럽 내부에서는 볼로냐, 파리, 옥스퍼드 등의 대학을 중심으로 토마스 아퀴나스 등으로 대표되는 스콜라 철학이 학문적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또한 각지에서 웅장한 고딕 양식의 대성당 건축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등 중세 특유의 종교적 예술과 지적 탐구가 깊이를 더해가던 시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