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9

1279년은 세계사적으로 몽골 제국이 동아시아 패권을 완전히 장악하며 중국 대륙을 통일한 결정적인 해로 기록된다. 쿠빌라이 칸이 이끄는 원나라는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남송과의 전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로써 오랫동안 북방 민족과 한족으로 분열되어 있던 중국 대륙은 이민족인 몽골족의 지배 아래 하나로 통합되었으며, 이는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한족 외의 민족이 중국 전체를 정복한 사건이었다.

이 해 3월 19일에 벌어진 애산 전투(Battle of Yamen)는 남송의 최후를 장식한 해전이다. 현재의 광둥성 신후이구 남쪽 해상에서 벌어진 이 전투에서 원나라 수군은 수적으로 우세했던 남송의 함대를 궤멸시켰다. 패배가 기정사실화되자 남송의 재상 육수부(陸秀夫)는 여덟 살 난 마지막 황제 소제(빙, 昺)를 업고 바다에 투신하여 생을 마감했다. 황실과 함께 수만 명의 남송 군인과 관료, 백성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자결함으로써 1127년부터 이어진 남송은 152년 만에 공식적으로 멸망하게 되었다.

한반도의 고려 역시 1279년의 동아시아 정세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었다. 당시 고려는 제25대 국왕 충렬왕의 재위 기간이었으며, 원나라의 부마국으로 전락하여 본격적인 원 간섭기를 겪고 있었다. 남송의 멸망은 고려가 더 이상 원나라를 견제할 만한 외교적 세력을 동아시아 내에서 찾을 수 없게 되었음을 의미했다. 또한 원나라는 남송을 멸망시킨 후 확보한 강남 지방의 풍부한 물산과 남송의 잔존 수군을 바탕으로, 1281년에 있을 제2차 일본 원정(제2차 여몽연합군의 일본 정벌)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유럽과 중동 지역에서도 중요한 정치적 변화가 일어났다.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포르투갈의 국왕 아폰수 3세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 디니스 1세(Dinis I)가 왕위에 올랐다. 디니스 1세는 훗날 포르투갈의 농업과 상업을 크게 발전시키고 코임브라 대학교를 설립하는 등 국가의 기틀을 다진 성군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잉글랜드에서는 에드워드 1세가 교회가 세금을 내지 않고 토지를 독점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수법(Statute of Mortmain)을 제정하여 왕권을 강화했다. 한편 중동에서는 맘루크 왕조의 칼라운(Qalawun)이 새로운 술탄으로 즉위하여 십자군 국가들과 일칸국에 맞서 이슬람 세력을 수호하고 왕조의 전성기를 이끌 준비를 마쳤다.

결과적으로 1279년은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가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까지 완성된 해로서 세계사적 의의를 지닌다. 남송의 멸망과 원나라의 중국 통일은 육상 실크로드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해상 무역로까지 몽골 제국의 통제 아래로 들어가게 만들었다. 이는 동서양의 물자와 문화가 더욱 활발하고 광범위하게 교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으며, 중세 후기 유라시아 대륙의 역사를 관통하는 거대한 세계 체제(World System)가 구축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