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1년은 13세기의 평년으로, 고려 충렬왕 7년이자 원나라 세조 지원 18년에 해당한다. 이 해는 동아시아에서 유라시아 대륙에 이르기까지 몽골 제국의 팽창과 그에 따른 저항이 격렬하게 충돌했던 시기였다. 특히 일본 원정과 중동에서의 대규모 전투는 당대 세계사의 흐름을 결정짓는 중요한 사건들로 기록되었다.
동아시아에서는 여몽연합군의 제2차 일본 원정인 고안의 역이 전개되었다. 고려와 원나라의 군대로 구성된 대규모 함대가 일본 규슈 북부 해안에 상륙하여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8월경 규슈 해안을 덮친 거대한 태풍으로 인해 함대의 대부분이 침몰하거나 파손되었다. 이 자연재해는 일본에서 '가미카제(신풍)'로 불리게 되었으며, 몽골의 일본 정복 시도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이 사건은 고려와 원나라의 국력에 상당한 손실을 입혔으며, 일본 가마쿠라 막부의 정치 구조에도 영향을 미쳤다.
중동 지역에서는 몽골의 일칸국과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 사이에 제2차 홈스 전투가 발발하였다. 10월 29일, 시리아의 홈스 인근에서 벌어진 이 전투는 일칸국의 아바카 칸이 맘루크 왕조를 축출하기 위해 대규모 군대를 파견하며 시작되었다. 치열한 접전 끝에 사이프 알딘 칼라운이 이끄는 맘루크 군이 승리를 거두었다. 이 패배로 인해 몽골의 서진은 저지되었고, 레반트 지역에 대한 맘루크 왕조의 지배권은 더욱 공고해졌다.
유럽과 비잔티움 제국 방면에서는 교황권과 제국 간의 갈등이 이어졌다. 2월에는 프랑스 출신의 마르티노 4세가 새로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친프랑스 성향을 띠며 비잔티움 제국의 미카엘 8세를 파문하고 나폴리 국왕 샤를 드 안주의 콘스탄티노폴리스 탈환 계획을 지지하였다. 또한 발칸 반도에서는 비잔티움 제국이 베라트 공성전에서 시칠리아 왕국 군대를 격파하며 영토를 방어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고려 내부적으로는 일본 원정을 위해 설치된 정동행성이 원정 실패 이후에도 유지되면서 원나라의 간섭이 심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충렬왕은 원나라의 요구에 부응하며 국가 재정을 정비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으며, 원정 준비 과정에서 발생한 인명과 물자의 손실은 백성들의 삶에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이 시기의 혼란은 고려 후기 사회 구조의 변화를 촉발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