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7년은 13세기의 37번째 해이며, 육십갑자로는 정유년(丁酉年)이다. 한국사에서는 고려 고종 24년에 해당하며, 당시 동아시아와 유럽 전역은 몽골 제국의 팽창으로 인한 격동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고려는 강화도로 천도하여 몽골과의 장기적인 항전을 지속하고 있었고, 유럽 동부에서는 몽골 기병의 침공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역사적인 분기점이었다.
고려에서는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된 초조대장경을 대신하기 위해 팔만대장경(재조대장경) 간행 사업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1236년에 대장도감이 설치된 이후, 1237년에는 당대의 문장가 이규보가 대장경 조판의 취지를 밝히는 '대장각판군신기고문(大藏刻板君臣祈告文)'을 지어 부처의 힘으로 외세를 물리치고자 하는 국가적 염원을 공식화했다. 이는 최씨 무신 정권이 주도하여 민심을 수습하고 항전 의지를 불태우기 위해 추진한 최대 규모의 국책 사업이었다.
같은 해 고려 남부 지방에서는 사회적 혼란을 틈타 '이연년 형제의 난'이 발생했다. 전라도 담양에서 봉기한 이연년 형제는 백제 부흥을 기치로 내걸고 몽골과의 전쟁으로 인한 피로감과 무신 정권의 수탈에 반발하여 세력을 규합했다. 그들은 나주 등 주변 지역을 공격하며 위세를 떨쳤으나, 전주 관노 출신의 안경공이 거짓 항복하여 이연년을 술 취하게 만든 뒤 살해하거나 김경손 장군이 진압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평정되었다. 이 사건은 대몽 항쟁기 고려 내부의 사회적 모순과 민중의 동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된다.
세계사적으로는 바투 칸이 이끄는 몽골군이 러시아(루스) 원정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볼가 불가르를 정복한 몽골 서부 원정군은 1237년 12월, 랴잔 공국을 침공하여 도시를 포위하고 철저히 파괴했다. 이는 몽골의 유럽 원정 서막을 알리는 사건이었으며, 이후 키예프 루스 제후국들이 차례로 몽골의 지배하에 들어가는 '타타르의 멍에' 시기가 시작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한편 유럽 발트해 연안에서는 리보니아 검의 형제 기사단이 튜턴 기사단(독일 기사단)에 흡수 통합되었다. 1236년 자울레 전투에서 리투아니아군에게 괴멸적인 패배를 당한 리보니아 기사단은 독자적인 생존이 불가능해지자, 1237년 비테르보 조약을 통해 교황 그레고리오 9세의 승인을 받아 튜턴 기사단의 지부로 편입되었다. 이 통합은 튜턴 기사단이 프로이센과 발트 지역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북방 십자군 전쟁에서 더욱 강력한 군사 집단으로 거듭나는 중요한 정치적 변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