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7년

1147년은 고려 제18대 국왕 의종이 즉위한 지 2년째 되는 해였다. 고려 내부에서는 인종 시기에 발생했던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등 대규모 정변의 여파가 가라앉고 비교적 안정적인 정국이 유지되던 시기였다. 의종은 즉위 초반 문신들을 우대하며 평화로운 통치를 이어갔으나, 이러한 문치 중심의 정책은 훗날 무신정변의 불씨가 되는 문신과 무신 사이의 차별을 심화시키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대외적으로는 금나라와의 사대 관계를 통해 북방의 긴장을 완화하는 외교 정책을 펼쳤다.

유럽 대륙에서는 제2차 십자군 전쟁이 본격적으로 전개된 해였다. 교황 에우게니오 3세의 호소에 응하여 독일 국왕 콘라트 3세와 프랑스 국왕 루이 7세가 이끄는 대규모 군대가 성지로 출발했다. 이는 유럽의 국왕들이 직접 참여한 최초의 십자군 원정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상징성이 컸다. 그러나 독일 군대는 소아시아의 도릴라이움 전투에서 셀주크 튀르크 군대에게 대패하며 원정 초기부터 전력에 큰 타격을 입었고, 이는 원정 전체의 실패를 예고하는 전조가 되었다.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십자군 원정의 일환으로 리스본 공성전이 벌어졌다. 성지로 향하던 영국, 플랑드르, 독일 출신의 십자군 부대가 포르투갈 국왕 아폰수 1세의 요청을 받아 무어인이 점령하고 있던 리스본을 공격했다. 약 4개월간의 치열한 포위 공격 끝에 10월 25일 리스본이 함락되었으며, 이는 포르투갈 왕국이 영토를 확장하고 레콘키스타(국토 회복 운동)를 가속화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리스본은 이후 포르투갈의 중심 도시로 자리 잡게 되었다.

러시아 역사에서 1147년은 현재의 수도인 모스크바가 문헌상에 처음으로 등장한 해로 기록된다. 수즈달의 공작 유리 돌고루키가 동맹자인 스뱌토슬라프 올고비치를 '모스크바라 불리는 곳'으로 초대했다는 기록이 이 해의 연대기에 남아 있다. 당시 모스크바는 작은 요새에 불과했으나, 이 기록을 근거로 1147년을 모스크바의 공식적인 건립 연도로 간주한다. 이는 훗날 러시아 제국의 중심지로 성장하게 될 도시의 역사적 기원을 상징한다.

중동의 이슬람 세계에서는 장기 왕조의 누르 앗 딘이 세력을 확장하며 십자군의 위협에 대응했다. 그는 부친인 이마드 앗 딘 장기의 사후 영토를 분할 받아 시리아 지역의 주도권을 장악해 나갔으며, 십자군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이슬람 세력의 결집을 도모했다. 누르 앗 딘의 이러한 활동은 제2차 십자군이 다마스쿠스 공격에서 실패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했으며, 이후 살라흐 앗 딘으로 이어지는 이슬람 재통일 과정의 기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