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5년

1145년은 고려 인종 23년에 해당하는 해로, 한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헌 중 하나인 《삼국사기(三國史記)》가 완성된 시기이다. 김부식을 비롯한 관료 학자들이 왕명을 받들어 편찬한 이 책은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역사를 기전체 형식으로 정리한 현존하는 한국 최고(最古)의 역사서이다. 이 시기 고려는 내적으로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등을 겪은 뒤 유교적 통치 질서를 재정립하고 국가의 기틀을 공고히 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유럽에서는 제2차 십자군 운동을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되었다. 교황 에우제니오 3세는 1144년 이슬람 세력에게 에데사 백국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뒤, 1145년에 십자군 소집을 촉구하는 교황 칙령 ‘콴툼 프라이데케소레스(Quantum praedecessores)’를 발표하였다. 이는 제1차 십자군 이후 성지에 세워진 기독교 국가들을 보호하기 위한 대규모 군사 행동의 신호탄이 되었으며,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두스가 유럽 전역을 순회하며 십자군 참여를 독려하는 설교를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남아시아의 크메르 제국에서는 수리야바르만 2세의 통치 아래 거대한 사원 건축물인 앙코르 와트의 건설이 정점에 달해 있었다. 1145년경은 힌두교의 비슈누 신에게 헌정된 이 사원이 외형적으로 상당 부분 완성되었던 시기로 추정된다. 앙코르 와트는 당시 크메르 제국의 막강한 국력과 예술적 성취를 상징하는 구조물로, 왕권과 신권을 결합하여 제국의 중심지로 기능하였다.

중국 대륙에서는 금나라와 남송이 1142년 체결된 샤오싱 화의(紹興和議) 이후 비교적 안정적인 대립 국면을 유지하고 있었다. 남송은 화북 지방을 상실한 대신 강남 지역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문화와 예술을 꽃피웠으며, 금나라는 화북 지역의 통치를 확고히 하기 위해 한족의 제도와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평화는 비록 불안정한 형태였으나, 동아시아 전반에 걸쳐 문화적 교류와 경제적 성장을 촉진하는 배경이 되었다.

학문과 종교 측면에서도 1145년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서구에서는 아랍의 과학과 철학 지식이 라틴어로 번역되어 유입되면서 이른바 '12세기 르네상스'의 기반이 닦이고 있었다. 또한 기독교 수도원 개혁 운동이 지속되면서 신학적인 논쟁과 체계화가 이루어졌고, 이는 후대 중세 대학의 발전과 스콜라 철학의 형성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