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년

144년은 서기 2세기의 중반부에 해당하는 해로, 로마 제국과 동아시아의 한나라를 비롯한 고대 국가들이 각기 다른 정치적 변동과 사회적 발전을 겪던 시기다. 로마 제국에서는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의 치세가 안정적으로 이어지고 있었으며, 루키우스 헤디우스 루푸스 롤리아누스 아비투스와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맥시무스가 공동 집정관직을 수행하였다. 브리타니아 북부 지역에서는 안토니누스 성벽의 건설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며 제국의 북쪽 경계선이 확고히 설정되던 때였다.

동아시아의 후한에서는 중대한 권력의 교체가 일어났다. 제7대 황제인 순제가 8월에 붕어하자, 그의 아들인 어린 유병이 충제로 즉위하였다. 당시 충제는 태어난 지 1년 남짓 된 유아였기에 황태후 양씨가 섭정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양기 등 외척 세력이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황제의 요절과 외척의 집권은 후한 왕조의 정치적 불안정을 가중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한반도의 삼국 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각각 영토를 정비하고 국가 체제를 공고히 하고 있었다. 신라에서는 일성 이사금 11년에 해당하는 해로, 기록에 따르면 농사를 장려하기 위해 제방을 수리하고 논과 밭을 개간하는 등 민생 안정에 주력하였다. 고구려에서는 태조대왕의 장기 집권이 이어지며 중앙 집권적 기틀이 유지되었고, 백제에서는 개루왕이 재위하며 주변 말갈 세력의 침입에 대비하는 등 국방에 힘을 쏟았다.

종교 및 사상사 측면에서는 초기 기독교 내부에서 중요한 분열이 발생했다. 시노페 출신의 마르키온이 로마 교회에서 자신의 신학적 견해를 전파하다가 이단으로 판정받아 파문당한 해가 바로 144년이다. 마르키온은 구약의 신과 신약의 예수를 분리하는 이원론적 주장을 펼치며 마르키온파를 창설했다. 이는 향후 기독교가 정통 교리를 체계화하고 성경의 정경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강력한 외부적 자극제로 작용하였다.

결과적으로 144년은 세계사의 주요 문명권에서 내부적인 체제 변화와 사상적 갈등이 동시에 진행되던 시기였다. 로마는 팍스 로마나의 평화로운 시기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한나라는 권력 구도의 변화로 인한 혼란의 씨앗이 심어지고 있었다. 한반도의 삼국은 농업 생산력의 증대와 국경 방어를 통해 고대 국가로서의 생존과 번영을 도모하며 각기 다른 발전을 이룩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