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7년은 11세기 말에 해당하는 평년으로, 서구권에서는 제1차 십자군 전쟁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며 중세사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한 시기이다. 이 해는 유럽의 종교적 열망과 동로마 제국의 정치적 계산이 결합하여 소아시아와 레반트 지역의 지형 변화를 예고했다. 동양에서는 고려 왕조가 내치에 집중하며 국가 체제를 정비하던 시기였다.
제1차 십자군 원정군은 1097년 상반기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집결한 뒤 소아시아로 진격했다. 이들은 5월부터 셀주크 튀르크의 주요 거점인 니케아를 포위 공격했으며, 6월에 이를 함락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니케아 함락 직후 7월 1일에는 도릴라이움 전투가 벌어졌다. 여기서 십자군은 킬리지 아르슬란 1세가 이끄는 튀르크 기병대를 격파하며 소아시아 내륙을 관통할 수 있는 군사적 우위를 확보했다.
십자군은 소아시아를 횡단하여 1097년 10월, 시리아의 전략적 요충지인 안티오크에 도달했다. 안티오크는 견고한 성벽과 방어 체계를 갖춘 도시로, 십자군은 이를 점령하기 위해 장기적인 포위전을 시작했다. 이 공성전은 해를 넘겨 지속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십자군은 극심한 보급난과 기아, 질병에 시달리며 큰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안티오크 포위전은 예루살렘 탈환이라는 최종 목적지를 향한 결정적인 단계였다.
동아시아의 고려에서는 숙종 2년에 해당한다. 숙종은 즉위 이후 왕권 강화를 위해 다양한 개혁 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다. 특히 1097년에는 대각국사 의천의 건의에 따라 화폐 유통에 대한 논의가 심화되었으며, 이는 훗날 주전도감 설치와 해동통보 등의 화폐 주조로 이어지는 기틀이 되었다. 또한 고려는 북방 여진족의 동태를 주시하며 국경 방어 체제를 점검하고 국가의 내실을 다지는 데 주력했다.
동로마 제국의 황제 알렉시우스 1세 콤네누스는 1097년 십자군 지도자들로부터 정복지를 제국에 반환하겠다는 서약을 받아냈다. 니케아 함락 이후 도시의 소유권이 동로마 제국으로 넘어간 것은 이 서약의 결과였다. 그러나 이후 안티오크 점령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은 동로마 제국과 서구 기사들 사이의 신뢰 관계를 무너뜨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는 훗날 십자군 국가 건설과 제국 간의 복잡한 외교적 분쟁의 씨앗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