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세기는 중세 세계사에서 정치적 변동과 종교적 갈등, 그리고 새로운 질서가 태동한 격변의 시기였다. 유럽에서는 봉건제가 공고해지는 가운데 교권과 황권의 충돌이 본격화되었으며, 아시아에서는 송나라의 경제적 번영과 거란·여진 등 북방 민족의 성장이 두드러졌다. 또한 이 시기는 이슬람 세계의 대이동과 비잔티움 제국의 쇠퇴가 맞물리며 십자군 전쟁이라는 거대한 문명 간 충돌의 서막을 알린 때이기도 하다.
서유럽에서는 1054년 동서 교회의 대분열이 일어나 기독교 세계가 로마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로 공식적으로 갈라졌다. 이어 성직자 임명권을 둘러싸고 교황 그레고리오 7세와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가 충돌한 '카노사의 굴욕(1077년)'은 교권이 세속 권력에 우위를 점하는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다. 영국에서는 1066년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이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승리하며 노르만 왕조를 개창하여 영국 역사의 중대한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동아시아에서는 북송이 화폐 경제의 발전과 함께 인쇄술, 화약, 나침반 등 획기적인 과학 기술의 발전을 이루며 문화적 전성기를 누렸다. 한반도의 고려는 거란(요나라)의 거듭된 침입을 물리치며 동북아시아의 세력 균형을 유지하는 한편, 송나라와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청자 문화와 불교 예술을 꽃피웠다. 특히 1019년 강감찬이 이끄는 고려군이 귀주대첩에서 거란군을 전멸시키며 동아시아에 장기간의 평화 체제가 정착되었다.
중동과 중앙아시아에서는 셀주크 튀르크가 부상하여 아바스 왕조의 실권을 장악하고 서아시아의 새로운 패자로 등장했다. 1071년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셀주크 튀르크가 비잔티움 제국을 격파하면서 아나톨리아 반도의 주도권이 이슬람 세계로 넘어갔다. 이에 위협을 느낀 비잔티움 제국은 서유럽에 원군을 요청했고, 1095년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교황 우르바누스 2세의 호소로 제1차 십자군이 결성되어 1099년 예루살렘을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문화와 예술 측면에서 11세기는 각 지역의 고유한 양식이 확립된 시기였다. 유럽에서는 장중한 석조 구조와 반원형 아치를 특징으로 하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 건축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이븐 시나와 같은 학자들이 의학과 철학 분야에서 인류사에 남을 업적을 남겼다. 이처럼 11세기는 대륙 간의 교류와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근대 이전의 고전적인 문명 체계가 정교하게 다듬어진 시기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