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6

1046년은 11세기의 중반부에 해당하는 해로, 전 세계적으로 왕조의 교체와 종교적 권력 재편, 그리고 제국의 세력 확장과 내부 정비가 동시에 일어난 시기였다. 동양에서는 고려의 국왕 교체와 송나라의 문치주의가 전개되었으며, 서양에서는 신성 로마 제국이 가톨릭 교회의 내부 분쟁에 직접 개입하며 황제권의 강화를 도모하는 등 중요한 역사적 분기점을 맞이했다.

한반도의 고려 왕조에서는 제10대 국왕인 정종(靖宗)이 승하하고 그의 동생인 문종(文宗)이 즉위하였다. 정종은 재위 기간 동안 거란의 침입에 대비해 나성을 완공하고 북방 방어 체제를 정비하는 등 국방 강화에 힘썼으나, 재위 12년 만에 서거하였다. 그의 뒤를 이어 즉위한 문종의 치세는 고려의 황금기로 불리며, 1046년은 고려가 문물제도를 정비하고 대외적으로 안정을 구가하며 전성기로 나아가는 기틀이 마련된 해였다.

서구 사회에서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3세가 이탈리아로 원정을 떠나 로마 가톨릭 교회의 극심한 혼란을 정리한 해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교회는 세 명의 교황이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는 대분열의 상태에 있었다. 하인리히 3세는 수트리 공의회를 소집하여 분쟁 중인 교황들을 모두 폐위시키고, 독일 출신의 클레멘스 2세를 새로운 교황으로 옹립하였다. 이를 통해 황제권이 교황권에 우위를 점하는 '제국 교회 체제'가 공고해졌으며, 동시에 교회 개혁 운동의 서막이 올랐다.

비잔티움 제국에서는 콘스탄티누스 9세 모노마코스의 통치 아래 문화와 예술이 융성했으나, 대외적인 군사적 위협은 점차 고조되고 있었다. 발칸반도에서는 페체네그족의 침입이 계속되어 제국의 국경을 위협했고, 동방에서는 셀주크 투르크의 세력이 확장되기 시작하면서 장차 일어날 대규모 충돌의 전조를 보였다. 제국 내부에서는 관료 집단과 군사 귀족 간의 대립이 심화되며 장기적인 쇠퇴의 원인이 형성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중국의 송나라는 인종(仁宗)의 치세 하에 유교적 지식인 관료들이 중심이 된 문치주의가 정착되어 있었다. 1040년대 초반 시작된 '경력신정(慶曆新政)'의 여파가 남아있던 시기로, 범중엄을 비롯한 개혁파 인사들이 관료제의 부패를 척결하고 국가 재정을 정비하려는 시도를 지속했다. 비록 보수파의 반발로 개혁의 동력은 다소 약화되었으나, 이 시기의 정치적 논쟁과 학문적 성취는 훗날 성리학의 발달과 왕안석의 변법으로 이어지는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