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와라노 이쿠시(藤原育子, 1146년 ~ 1173년)는 일본 헤이안 시대 후기의 황후로, 제78대 니조 천황의 중궁이다. 아버지는 섭정 관백을 지낸 후지와라노 다다미치이며, 어머니는 카가노 쓰네모토의 딸인 카가이다. 그녀는 권문세가인 후지와라 북가(北家)의 직계 혈통으로서 당시 조정 내의 권력 투쟁과 가문의 세력 유지를 위해 중요한 정략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쿠시는 1162년(오호 2년) 니조 천황의 후궁인 뇨고(女御)로 입궁하였다. 당시 조정은 천황의 친정 세력과 상황의 인세이(院政) 세력, 그리고 섭관가인 후지와라 가문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다. 그녀의 부친 다다미치는 가문의 위상을 공고히 하기 위해 딸을 천황의 배필로 보냈으며, 입궁한 그해 말에 바로 중궁(中宮)으로 책봉되었다.
그녀가 중궁이 된 과정에는 정치적 배경이 짙게 깔려 있었다. 당시 이미 후지와라노 다이시가 황후로, 후지와라노 시메코가 중궁으로 있는 등 여러 명의 황후가 공존하는 상황이었다. 이쿠시의 책봉은 섭관가의 권위를 재확인하고 니조 천황의 정통성을 뒷받침하려는 다다미치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였다.
그러나 니조 천황과의 사이에서 자녀는 태어나지 않았다. 1165년 니조 천황이 23세의 젊은 나이로 서거하자, 이쿠시는 의지할 곳을 잃고 출가하여 불문에 귀의하였다. 그녀는 남편의 죽음 이후 세속의 정치적 풍파에서 물러나 수행에 전념하며 여생을 보냈다.
이쿠시는 1173년(조안 3년) 2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삶은 헤이안 시대 말기 섭관정치가 쇠퇴하고 무사 계급이 부상하기 직전, 귀족 사회의 마지막 화려함과 그 이면에 감춰진 정략적 도구로서의 비극을 보여준다. 그녀가 머물렀던 시기는 호겐의 난과 헤이지의 난 이후 조정의 질서가 재편되던 격동기였으며, 그녀는 그 흐름 속에서 가문의 명예를 짊어졌던 인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