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년은 서기 2세기의 중반에 해당하는 해로, 로마 제국에서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루키우스 베루스가 공동 황제로 통치하던 시기였다. 이 해는 로마 제국의 동방 국경에서 파르티아 제국과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고조된 시점으로 기록된다. 전임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가 사망한 이듬해로서, 두 황제는 제국의 안정과 국경 방어를 위해 긴밀히 협력했으나 동부 전선에서 발생한 위협은 제국에 큰 도전 과제가 되었다.
로마 제국 내부에서는 파르티아 왕국과의 전쟁 준비가 핵심적인 사안이었다. 파르티아의 왕 볼로가세스 4세가 로마의 속주나 다름없던 아르메니아를 침공하고 로마군을 격파하자, 공동 황제 중 한 명인 루키우스 베루스가 직접 동방 원정길에 올랐다. 루키우스 베루스는 이해에 로마를 떠나 안티오키아에 본부를 설치하고 전쟁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이는 향후 수년간 이어질 로마-파르티아 전쟁의 서막이었으며, 로마군은 이 과정을 통해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려 시도했다.
동아시아에서는 중국 후한의 환제가 통치하던 시기였다. 당시 후한 조정은 환관들의 권력 장악과 그에 반대하는 사대부 세력 간의 정치적 대립이 심화되고 있었다. 또한 변방에서는 이민족의 침입이 빈번했는데, 특히 162년에는 강족의 반란이 거세게 일어나 후한의 군사적 대응이 집중되었다. 이러한 내부의 정치적 혼란과 외부의 군사적 압박은 후한의 국력을 점진적으로 소진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반도의 삼국 시대에는 고구려의 태조대왕, 백제의 개루왕, 신라의 아달라 이사금이 각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다. 고구려는 영토 확장과 중앙 집권화를 지속하며 요동 지역에서 후한과 대치하는 형세를 유지했다. 신라는 아달라 이사금 재위기에 영남 지역의 통제권을 강화하고 계립령과 죽령 등의 도로를 개척하며 북방 진출의 기틀을 닦았다. 백제의 개루왕 역시 말갈과의 분쟁 속에서 국경을 수비하며 국가의 기틀을 다지는 데 주력했다.
법률 및 사회적 측면에서 로마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스토아 철학의 가르침을 통치에 반영하고자 노력했다. 그는 법적 절차의 공정성을 높이고 노예나 아동과 같은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일부 보호하는 법적 개혁을 추진했다. 이처럼 162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강력한 전제 군주제 아래에서 전쟁과 내부 개혁, 그리고 정치적 갈등이 복합적으로 전개되던 역동적인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