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146년은 2세기 중반에 해당하는 해로, 로마 제국과 동아시아의 한 왕조를 중심으로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이 기록된 시기이다. 서양에서는 로마 제국이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의 통치 아래 소위 '팍스 로마나'라고 불리는 안정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이 해에 훗날 로마의 황제가 되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루키우스 베루스가 공동 집정관을 맡아 국정을 돌보며 정치적 경험을 쌓았다.
동양의 중국 후한 왕조에서는 권력 구도의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후한의 제9대 황제인 질제가 실권자인 대장군 양기를 '발호장군'이라 부르며 적대감을 드러냈다가, 결국 양기에 의해 독살당하는 참극이 발생했다. 질제의 뒤를 이어 환제가 15세의 나이로 즉위하였으나, 황제의 권위보다는 양씨 일족을 중심으로 한 외척 세력의 권세가 정점에 달하며 조정의 혼란이 가중되었다.
한반도의 삼국 시대 역시 각국이 국가의 기틀을 다지며 성장을 지속하던 시기였다. 고구려에서는 제6대 태조대왕이 장기 집권하며 중앙 집권화를 꾀하고 있었으며, 영토 확장과 부족 통합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백제는 제4대 개루왕의 재위 기간으로, 영토의 내실을 다지고 농경을 장려하며 국가의 경제적 기반을 확충하는 데 주력했다. 신라에서는 제7대 일성 이사금이 통치하며 제방을 수축하고 농사를 권장하는 등 민생 안정을 위한 정책을 펼쳤다.
사회 문화적으로 146년은 고대 세계의 종교와 철학이 각 지역에서 확고한 자리를 잡아가던 때였다. 로마 제국 내에서는 스토아 철학이 지성인들 사이에서 널리 수용되었고, 기독교는 박해 속에서도 서서히 세력을 넓혀가고 있었다. 중국에서는 유교적 가치관이 관료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었으나, 정치적 부패와 혼란으로 인해 도교적 색채를 띤 사상들이 민간에서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146년은 동서양 모두에서 기존의 질서가 유지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향후 닥쳐올 거대한 변화와 혼란의 씨앗이 자라나고 있던 전환기적 시점이었다. 로마의 평화는 정점에 도달해 있었고, 후한은 외척 정치의 폐단으로 인해 쇠퇴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으며, 한반도의 삼국은 고대 국가로서의 면모를 완성해 가며 상호 경쟁과 교류를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