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걸

한창걸(韓昌杰, 1892~1938)은 일제강점기 러시아 연해주를 중심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 혁명가이다. 함경북도 경성 출신으로 유년기에 가족과 함께 러시아 연해주 지역으로 이주하여 성장하였다. 그는 러시아 군대에 입대하여 군사 기술과 전술을 익혔으며, 이러한 경험은 훗날 그가 항일 무장 투쟁의 지도자로 활동하는 데 결정적인 기반이 되었다.

1919년 3·1 운동의 소식이 연해주에 전해지자 한창걸은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그는 이만(Iman, 현재의 달네레친스크) 지역에서 한인 유격대를 조직하여 일본군 및 제정 러시아를 지지하는 백군(白軍)에 맞서 무장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의 부대는 뛰어난 전투력을 바탕으로 연해주 일대에서 전개된 여러 전투에서 승리하며 항일 무장 세력의 핵심적인 축으로 부상하였다.

무장 투쟁 과정에서 한창걸은 사회주의 사상을 수용하고 고려공산당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21년 자유시 참변 이후 흩어진 한인 독립군 부대들을 재조합하고 통합하는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는 소비에트 정권과의 협력을 통해 항일 투쟁의 병참 기지를 확보하고, 한인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30년대 중반 스탈린의 대숙청이 시작되면서 한창걸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였다. 1937년 소련 당국에 의해 일본 스파이라는 허위 혐의로 체포되었으며, 이듬해인 1938년 하바롭스크에서 총살당하였다. 당시 연해주에 거주하던 수많은 고려인 지도자들과 함께 희생된 그는 한동안 역사 속에서 잊힌 인물이 되었다.

냉전 종식 이후 러시아 측 자료가 공개되면서 그의 구체적인 행적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항일 투쟁 공로를 인정하여 200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한창걸은 낯선 이국땅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며 무장 투쟁과 사회주의 운동을 병행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