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8년

938년은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직후인 태조 21년에 해당하며, 동아시아 전반에서 기존 질서가 재편되고 새로운 국가들이 기틀을 다지던 시기였다. 한반도에서는 통일 이후의 내치 안정과 대외 관계 정립이 주요 과제였으며, 중국 대륙과 동남아시아에서도 역사적 전환점이 되는 사건들이 발생하였다.

고려 왕조는 이 해에 대외 외교를 통해 국가의 정통성을 공고히 하는 데 주력하였다. 태조 왕건은 박술희를 후진(後晉)에 사신으로 보내어 화친을 맺고 국제적인 입지를 다졌다. 후삼국 통일 후 내부적인 통합을 추진하던 고려에 있어 중국의 신흥 왕조들과의 교류는 북방 정세를 파악하고 국내 정치를 안정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남아시아 역사에서 938년은 베트남의 독립을 결정지은 해로 기록된다. 응오꾸옌(Ngô Quyền)이 이끄는 베트남 군대는 박당강 전투에서 중국 남한(南漢)의 수군을 섬멸하였다. 응오꾸옌은 강물 속에 쇠말뚝을 박아 조수 간만의 차를 이용하는 전술로 승리를 거두었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베트남은 약 천 년에 걸친 중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왕조 시대를 열게 되었다.

중국 대륙은 오대십국 시대의 혼란이 지속되고 있었다. 화북 지역의 후진(後晉)은 거란(요나라)의 지원을 받아 건국된 한계로 인해 연운십육주를 거란에 할양하는 등 북방 민족의 영향력 아래에 놓여 있었다. 반면 강남 지역에서는 남당(南唐)이 건국되어 문화적, 경제적 번영을 꾀하며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분열 양상은 송나라가 대륙을 재통일하기 전까지 이어졌다.

일본에서는 헤이안 시대 중기에 접어들며 중앙 귀족 사회의 부패와 지방 통제력 약화가 나타나고 있었다. 특히 간토 지방에서는 다이라 노 마사카도의 난이 발생하기 직전의 시기로, 지방 무사 세력이 중앙 정부에 항거하며 독자적인 힘을 키우기 시작했다. 이는 향후 일본 사회가 무사 중심의 봉건제로 이행하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