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니 호(Heine 號)는 1870년(고종 7년) 조선의 부산항에 입항하여 통상을 요구했던 북독일 연방 소속의 상선이다. 당시 조선은 흥선대원군의 강력한 쇄국정책 하에 서구 열강과의 교류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었으며, 이 시기는 이양선이 한반도 주변 해역에 빈번히 출몰하며 통상 압력을 가하던 시기였다. 하이니 호의 등장은 프랑스나 미국 외에도 독일을 포함한 유럽의 다른 국가들이 조선에 대한 탐색과 경제적 접근을 시도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하이니 호는 1870년 5월 부산 초량 앞바다에 정박하였다. 이 배의 선장은 헤르만(Hermann)이었으며, 이들은 동래부사에게 서신을 보내 자신들이 독일에서 온 상인임을 밝히고 정식으로 무역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하였다. 이들은 평화적인 상업 교류를 목적으로 내세웠으나, 당시 조선 관리들은 이들을 경계하며 접촉을 최소화하고자 노력하였다.
조선 조정은 하이니 호의 통상 제안을 단호히 거절하였다. 동래부사는 조선의 법도상 외국과의 사사로운 거래는 허용되지 않으며, 특히 서양 국가와는 외교 관계를 맺은 전례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퇴거를 명령하였다. 당시 조선은 병인양요와 오페르트 도굴 사건 등을 겪으며 서구인들에 대한 적대감이 매우 높았던 상태였으므로 하이니 호의 요구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이니 호는 조선 측의 강경한 태도와 협상 거부로 인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얼마 후 부산항에서 철수하였다. 이 과정에서 특별한 무력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으나, 조선 정부는 이 사건 이후 해안 지역의 방비를 더욱 강화하고 이양선 출몰에 대한 감시를 엄격히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는 서구 세력의 통상 요구가 점차 다각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였다.
역사적으로 하이니 호 사건은 1880년대 조선과 독일 제국이 정식으로 조독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기 전, 양국 간에 이루어진 초기 접촉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비록 통상 성사라는 실질적인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나, 독일 상권이 한반도에 진출하기 위해 시도했던 구체적인 사례로서 의미가 있다. 또한 이는 19세기 후반 조선이 처했던 대외적인 개방 압박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