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0년

1870년은 서구 근대사에서 국가 간 세력 판도가 급격히 재편된 전환점이었다. 가장 중대한 사건은 7월에 발발한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이끄는 프로이센은 독일 통일의 마지막 걸림돌이었던 프랑스와 격돌했다. 나폴레옹 3세가 이끄는 프랑스군은 세단 전투에서 참패하며 무너졌고, 이는 유럽 내 프랑스의 패권이 종식되고 독일 제국의 탄생을 예고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 내부에서는 전쟁의 패배로 인해 커다란 정치적 격변이 일어났다. 나폴레옹 3세가 포로로 잡힌 후 제2제정이 붕괴되었으며, 파리에서는 공화주의자들이 중심이 되어 제3공화국을 선포했다. 그러나 곧이어 시작된 프로이센군의 파리 포위전과 혹독한 겨울은 시민들에게 극심한 고통을 안겨주었으며, 이는 이듬해 파리 코뮌이라는 혁명적 자치 정부가 등장하게 되는 사회적 도화선이 되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오랜 숙원이었던 통일의 완성이 이루어졌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의 영향으로 로마에 주둔하던 프랑스군 수비대가 철수하자, 이탈리아 왕국군은 9월에 로마를 점령했다. 이로써 천년 넘게 이어져 온 교황령의 세속적 통치권은 종말을 고했고, 로마는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같은 해 로마 가톨릭교회는 제1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교황 무오설'을 교리로 채택하며 교황의 영적 권위를 공고히 했다.

미국에서는 남북전쟁 이후 재건 시대의 중요한 진전이 있었다. 2월에 미국 수정헌법 제15조가 비준되어 인종, 피부색, 혹은 과거 노예 상태에 관계없이 모든 남성 시민에게 투표권을 보장하게 되었다. 이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 법적인 참정권을 부여한 역사적인 조치였으나, 남부 주들을 중심으로 이를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뒤따르는 등 인종 간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동아시아의 조선은 흥선대원군의 섭정 아래 쇄국 정책을 고수하며 대외적 긴장이 지속되던 시기였다. 1866년 병인양요 이후 서구 열강의 통상 요구가 거세지는 가운데, 1870년에는 일본 메이지 정부가 서계(書契) 문제로 조선과 외교적 마찰을 빚으며 향후 정한론의 배경이 되는 갈등 양상을 보였다. 조선 내부적으로는 서원 철폐와 경복궁 중건 등 왕권 강화 정책이 이어지며 근대적 변화와 전통 수호가 충돌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