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인양요(丙寅洋擾)는 1866년에 발생한 조선과 프랑스 간의 무력 충돌을 가리킨다. 이 사건은 조선에서의 기독교 선교와 외세의 간섭에 대한 갈등이 극대화된 상황에서 발생하였다. 당시 조선은 외국과의 교류를 제한하는 '쇄국정책'을 유지하고 있었고, 프랑스는 조선 내의 기독교 신자의 보호와 선교 활동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병인양요의 배경은 조선에 거주하던 프랑스 선교사와 개신교 신자들이 신앙의 자유를 요구하고, 조선 정부가 이를 거부함으로써 더욱 악화되었다. 이후 프랑스는 조선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고, 1866년 여러 척의 군함을 보내 조선의 강화도로 침공하였다. 이 과정에서 '양요'라는 용어는 외세에 의한 침입과 공격을 의미한다.
조선 정부는 전투를 통해 저항하였고, 병인양요 전투에서 조선군은 프랑스군에 대항했지만, 군사적 기술과 경험에서 밀려 결국 패배하였다. 프랑스군은 강화도를 점령하고 이후 군함으로 조선의 여러 해안을 공격하였다. 이로 인해 조선의 방어력이 드러났고, 외세의 압박이 더욱 심화되었다.
결국 이 사건은 조선이 외세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고, 이후 조선은 외교 정책과 군사력의 근대화를 서둘러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병인양요는 조선과 서구 열강 간의 긴장 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되며, 조선의 근대화 과정에서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