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민주 공화국

핀란드 민주 공화국은 겨울 전쟁 초기인 1939년 12월 1일, 소련이 핀란드의 합법 정부를 대체하기 위해 점령지인 테리요키(현재의 젤레노고르스크)에서 수립한 괴뢰 정부이다. 이 정부는 흔히 수립된 장소의 이름을 따서 '테리요키 정부'라고도 불린다. 소련은 이 정부를 핀란드의 유일한 정통 정부로 선포하고 공식적으로 승인하였으며, 당시 핀란드 정부와의 외교 관계를 단절했다.

이 정부의 수장은 핀란드 공산당의 창립자 중 한 명이자 코민테른의 비서였던 오토 빌레 쿠시넨이 맡았다. 수립 직후인 12월 2일, 쿠시넨 정부는 소련과 '상호 원조 및 우호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은 소련이 요구해온 카렐리야 지협의 영토 할양과 항구 대여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으며, 그 대가로 소련은 동카렐리야 지역의 일부를 핀란드 민주 공화국에 양도하기로 약속하였다. 이는 소련의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한 정치적 명분 쌓기의 일환이었다.

소련은 핀란드 민주 공화국 산하에 '핀란드 인민군'이라는 군사 조직을 창설하기도 했다. 인민군은 주로 소련 내에 거주하던 핀란드계 및 카렐리야계 인구와 일부 전향한 핀란드군 포로들로 구성되었다. 소련의 계획은 이들이 붉은 군대와 함께 헬싱키로 진격하여 해방군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었으나, 실제 전투 역량은 매우 미비했다. 이들은 주로 선전 활동에 투입되었으며 핀란드 정규군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 못했다.

소련의 기대와 달리 핀란드 민주 공화국은 핀란드 내부에서 지지를 전혀 얻지 못했다. 오히려 외부 세력에 의해 세워진 괴뢰 정부의 존재는 핀란드 내 좌익과 우익을 하나로 결속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핀란드 노동자들조차 쿠시넨 정부를 거부하고 기존 정부를 지지하며 소련군에 저항했다. 국제적으로도 소련의 위성국이었던 몽골 인민 공화국과 투바 인민 공화국을 제외하면 그 어느 국가로부터도 정식 국가로 인정받지 못했다.

겨울 전쟁이 소련의 예상보다 장기화되고 핀란드의 저항이 거세지자, 소련 정부는 결국 현실적인 타협안을 모색하게 되었다. 소련은 쿠시넨 정부를 내세워 핀란드 전체를 점령하려던 계획을 수정하고, 핀란드의 합법 정부와 직접 평화 협상을 진행했다. 1940년 3월 모스크바 평화 조약이 체결되면서 핀란드 민주 공화국은 존재 명분을 잃었다. 같은 해 3월 31일, 이 정부는 소련 내 카렐리야 자치 공화국과 합병되어 카렐리야-핀란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개편되면서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