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와 칠레의 관계는 지리적 인접성과 공유된 역사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복잡하고 다층적인 양상을 띤다. 두 국가는 스페인 식민 지배를 거쳐 19세기 초 독립하였으나, 국경 획정과 자원 통제권을 둘러싼 갈등이 지속되었다. 특히 19세기 후반에 발생한 태평양 전쟁은 양국 관계의 성격을 규정짓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국민적 감정과 외교 정책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1879년부터 1884년까지 이어진 태평양 전쟁은 페루-볼리비아 연합군과 칠레 간의 영토 분쟁이었다. 초석(saltpeter) 매장지를 둘러싼 이권 다툼에서 시작된 이 전쟁에서 승리한 칠레는 페루의 타라파카주를 병합하고 아리카와 타크나 지역을 점령했다. 1929년 리마 조약을 통해 타크나는 페루로 반환되었으나 아리카는 최종적으로 칠레 영토로 남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영토 상실과 전쟁의 상흔은 페루인들에게 뿌리 깊은 반칠레 정서를 남겼으며, 칠레에게는 국가적 승리의 역사로 기억되며 양국 간 심리적 간극을 만들었다.
21세기에 들어서며 양국은 해상 경계선 확정 문제를 두고 다시 대립했다. 페루는 칠레와의 해상 경계가 과거 조약에 의해 명확히 확정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2008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소송을 제기했다. 2014년 ICJ는 칠레가 실질적으로 점유해 온 해역 중 일부를 페루의 배타적 경제수역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양국 정부는 이 판결을 공식적으로 수용하고 이행함으로써 오랜 법적 분쟁을 일단락 지었으며, 이는 갈등을 법적으로 해결하고 관계 개선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전기가 되었다.
영토와 자원 문제 외에도 양국은 문화적 유산을 두고 치열한 자존심 대결을 벌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포도 증류주인 '피스코(Pisco)'의 기원 논쟁이다. 페루와 칠레는 서로 자국이 피스코의 원조임을 주장하며 국제 시장에서 명칭 사용권을 두고 오랫동안 갈등해 왔다. 또한 미식 문화, 민속 무용, 역사적 인물에 대한 해석 등 다양한 문화적 영역에서 경쟁적인 태도를 보이며, 이는 양국 국민 간의 문화적 라이벌 의식을 강화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최근에는 역사적 앙금을 넘어 경제적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한 협력 관계가 강화되는 추세다. 페루와 칠레는 멕시코, 콜롬비아와 함께 태평양 동맹(Pacific Alliance)의 창설 멤버로서 역내 경제 통합과 자유 무역을 주도하고 있다. 상호 투자와 무역 규모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특히 칠레 자본의 페루 서비스업 진출과 페루 노동자의 칠레 이주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비록 과거사로 인한 국민적 감정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나, 양국은 경제적 동반자 관계를 통해 미래지향적인 공존을 모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