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앙쿠 압둘 라만(Tuanku Abdul Rahman ibni Almarhum Tuanku Muhammad)은 독립한 말라야 연방(현 말레이시아)의 초대 국왕(양디-페르투안 아공)이자 느그리슴빌란주의 제8대 통치자이다. 그는 1957년 말라야 연방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을 때 초대 국왕으로 선출되어 1960년 서거할 때까지 재임하였다. 말레이시아의 헌법주의와 의회 민주주의의 기틀을 다진 상징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1895년 느그리슴빌란의 스리 메난티에서 태어난 그는 말라야에서 초기 교육을 받은 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런던의 이너 템플(Inner Temple)에서 법학을 공부하여 1928년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였다. 이러한 법학적 배경은 그가 이후 통치자가 되었을 때 법치주의를 중시하고 헌법에 기반한 국가 운영을 강조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귀국 후에는 여러 공직을 거치며 행정 및 사법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다.
1933년 부친의 뒤를 이어 느그리슴빌란의 통치자인 양디-페르투안 브사르(Yang di-Pertuan Besar)로 즉위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점령기를 겪으면서도 자신의 영지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전쟁 종료 후 영국이 제안한 말라야 연합(Malayan Union) 계획에 반대하는 등 말레이인들의 권익 보호와 자치권 확보를 위해 정치적 목소리를 냈다. 이후 1948년 말라야 연방이 결성되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1957년 8월 31일 말라야 연방이 독립하면서, 각 주의 통치자들로 구성된 통치자 회의(Conference of Rulers)에서 그는 초대 국왕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임기 동안 국가의 통합을 도모하고 신생 독립국의 제도적 안정을 위해 헌신하였다. 특히 국왕의 권한이 헌법에 의해 제한되고 정의되는 입헌군주제의 원칙을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말레이시아 정치 체제의 모범을 보였다.
투앙쿠 압둘 라만은 1960년 4월 1일 쿠알라룸푸르의 이스타나 네가라에서 서거하였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현재 말레이시아의 화폐인 링깃(Ringgit)의 모든 지폐 앞면에는 그의 초상이 그려져 있다. 또한 쿠알라룸푸르에 위치한 역사적인 도로인 잘란 투앙쿠 압둘 라만(Jalan Tuanku Abdul Rahman) 등 국가 곳곳의 주요 시설에 그의 이름이 명명되어 현대 말레이시아의 국부 중 한 명으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