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티야 연합 왕국(Corona de Castilla)은 중세 및 근세 초기 이베리아반도 중서부에 존재했던 국가들의 연합체로, 현대 스페인의 형성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정치 단위이다. 1230년 카스티야 왕국의 국왕 페르난도 3세가 카스티야 왕국과 레온 왕국의 왕위를 동시에 계승하며 두 왕국이 하나의 군주 아래 결합하면서 본격적으로 성립되었다. 이는 단순히 영토의 결합을 넘어 행정, 법제, 군사적 역량을 결집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베리아반도 내 기독교 세력 중 가장 강력한 국가로 부상하는 발판이 되었다.
이 연합 왕국은 이베리아반도 내 이슬람 세력을 축출하기 위한 레콘키스타(국토 회복 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특히 페르난도 3세 치하에서 이슬람 세력의 주요 거점이었던 코르도바와 세비야를 탈환하며 영토를 남쪽으로 크게 확장하였다. 이러한 군사적 성공은 카스티야가 반도 내 다른 기독교 왕국인 아라곤, 나바라, 포르투갈에 비해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만들었으며, 가톨릭 신앙을 중심으로 한 국가적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배경이 되었다.
카스티야 연합 왕국은 정치 및 법제적 측면에서도 중대한 발전을 이루었다. 알폰소 10세 시대에는 로마법과 교회법을 집대성한 법전인 '시에테 파르티다스(Siete Partidas)'를 편찬하여 중앙집권적 통치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또한, 카스티야의 의회인 '코르테스(Cortes)'는 국왕의 과세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유럽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형성된 대의 기구 중 하나로 기능하였다. 문화적으로는 카스티야어(현대 스페인어의 모태)가 행정과 문학의 표준 언어로 정착하며 내부적 통합을 가속화하였다.
15세기 후반,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와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의 결혼은 스페인 통일의 결정적인 전기가 되었다. '가톨릭 부부 왕'으로 불린 이들은 1492년 이슬람의 마지막 보루였던 그라나다를 함락하며 레콘키스타를 완수하였다. 같은 해 이사벨 1세의 후원을 받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도달함에 따라 카스티야는 막대한 부와 영토를 확보하며 세계적인 대제국으로 도약하게 되었다.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는 법적으로 아라곤이 아닌 카스티야 연합 왕국에 귀속되었으며, 이는 카스티야의 제도와 언어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결과를 낳았다.
카스티야 연합 왕국은 18세기 초반 펠리페 5세에 의해 단행된 누에바 플란타 칙령을 통해 행정적 독립성을 잃고 단일한 스페인 왕국으로 완전히 통합될 때까지 독자적인 제도와 관습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카스티야가 확립한 정치 구조, 종교적 근본주의, 그리고 카스티야어는 현대 스페인 국가 정체성의 근간이 되었다. 오늘날 스페인의 국기와 국장에 포함된 성(Castle) 문양은 이 연합 왕국이 스페인 역사에서 차지하는 역사적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