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2년은 유럽사와 세계사에서 중대한 전환점으로 기록되는 해다. 가장 먼저 이베리아반도에서는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 1세와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2세가 이끄는 기독교 연합군이 나스르 왕국의 수도 그라나다를 함락하며 약 800년 동안 이어진 국토 회복 운동인 레콘키스타를 완수했다. 이 사건으로 이슬람 세력은 이베리아반도에서 완전히 물러났으며, 스페인은 가톨릭을 중심 세력으로 하는 강력한 중앙 집권 국가로 발돋움할 기틀을 마련했다.
같은 해 10월, 이탈리아 출신의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스페인 왕실의 후원을 받아 대서양을 횡단한 끝에 오늘날 바하마 제도의 산살바도르섬에 도달했다. 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도착한 곳을 인도의 일부라고 믿었으나, 이 항해는 결과적으로 유럽인들에게 아메리카 대륙이라는 존재를 각인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는 유럽 열강의 신대륙 진출과 식민지 건설의 서막을 알리는 동시에,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생태계와 자원, 문화의 교류인 '콜럼버스 교환'의 시작점이 되었다.
종교적 측면에서는 스페인의 가톨릭 군주들이 알람브라 칙령을 선포하여 유대인들을 강제로 추방하거나 가톨릭으로의 개종을 강요했다. 이 조치로 인해 오랜 기간 스페인에 거주하며 경제와 학문 발전에 기여했던 수많은 유대인이 오스만 제국이나 북아프리카, 유럽 각지로 흩어지게 되었다. 이는 스페인 내부의 종교적 단일성을 강화하려는 목적이었으나, 장기적으로는 숙련된 인적 자원의 유실이라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반도에서는 르네상스 문화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피렌체의 통치자 로렌초 데 메디치가 사망했다. 그의 죽음은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 사이의 세력 균형이 무너지는 신호탄이 되었으며, 이후 이탈리아는 주변 강대국들의 전쟁터로 변모하는 시련을 겪게 되었다. 또한 교황청에서는 로드리고 보르자가 교황 알렉산데르 6세로 선출되어 보르자 가문의 권세가 절정에 달하는 등 유럽 내부의 정치적 역학 관계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1492년의 이러한 사건들은 중세의 종말과 근대의 시작을 상징하는 지표로 평가받는다. 대서양 항로의 개척은 유럽 경제의 중심축을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이동시켰으며, 서구 문명의 팽창주의가 본격화되는 도화선이 되었다. 이 해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은 현대 세계의 지정학적, 문화적 지형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