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하메하 1세는 하와이 제도를 하나로 통합하여 하와이 왕국을 건국한 초대 국왕이다. 18세기 중반 하와이섬에서 태어난 그의 본명은 파이에아였으나, 훗날 '고독한 자'라는 뜻의 카메하메하로 불리게 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그가 태어날 때 하늘에 큰 별이 나타나 위대한 통치자의 탄생을 예고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뛰어난 체격과 무예를 갖춘 전사로 명성을 떨쳤으며, 하와이의 전설적인 돌인 나하 스톤을 들어 올려 자신의 통치권을 입증하기도 했다.
카메하메하 1세는 서구 열강의 기술을 전략적으로 수용하여 통일 전쟁을 수행했다. 그는 제임스 쿡 선장의 방문 이후 유입된 서양의 총기와 대포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였고, 존 영과 아이작 데이비스 같은 서양인들을 고문으로 임용하여 군사 전술을 개선했다. 1795년 오아후섬의 누우아누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며 주요 섬들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이후 1810년에 외교적 협상을 통해 카우아이섬의 항복을 받아내며 마침내 하와이 제도의 완전한 통일을 이루어냈다.
국가를 통일한 후 카메하메하 1세는 법과 질서를 확립하여 사회적 안정을 꾀했다. 대표적인 업적으로는 '부러진 노의 법칙(Mamalahoe Kanawai)' 제정이 있다. 이 법은 전쟁 중 무고한 민간인을 공격하지 못하게 하고, 길가에 누워 있는 노인과 여성, 아이의 안전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는 하와이 역사상 최초의 현대적 인권 보호 법령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오늘날 하와이 주 헌법에도 그 정신이 계승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백단향 무역을 독점하고 국가 재정을 확충하여 서구 문물의 무분별한 유입 속에서 왕국의 자립성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그는 하와이 고유의 종교적 전통과 카푸(Kapu)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변화하는 국제 정세에 발맞추어 외교 관계를 관리했다. 이러한 통치 철학 덕분에 하와이는 태평양의 중심지로서 독립 국가의 위상을 굳건히 할 수 있었다.
1819년 카메하메하 1세는 하와이섬 카일루아-코나에서 서거했다. 하와이의 전통 관습에 따라 그의 유골은 왕의 영험한 힘인 '마나'를 보존하기 위해 아무도 모르는 비밀 장소에 안치되었으며, 현재까지 그 정확한 위치는 밝혀지지 않았다. 하와이 사람들은 매년 6월 11일을 '카메하메하의 날'로 지정하여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으며, 그는 하와이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군주이자 민족의 자부심으로 추앙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