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0년은 신라의 제41대 왕인 헌덕왕 2년이자 발해의 제6대 왕인 정왕 2년에 해당하는 해이다. 이 시기 동아시아와 서구 사회는 내부적인 권력 재편과 국가 체제의 정비를 겪고 있었다. 특히 중앙 집권 체제를 강화하려는 군주들의 노력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치적 갈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시기였다.
신라에서는 헌덕왕이 조카인 애장왕을 제거하고 왕위에 오른 직후, 자신의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지방 통치 체제를 점검하고 당나라와의 외교 관계를 유지하는 데 주력하였다. 당시 신라는 골품제의 모순과 지방 세력의 성장이 맞물려 사회적 긴장감이 점차 고조되던 시기였으나, 헌덕왕은 중앙 정부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였다.
일본에서는 헤이안 시대 초기 사가 천황의 치세 아래 ‘구스코의 변’으로 불리는 정변이 발생하였다. 이는 퇴위한 헤이세이 상왕이 다시 권력을 잡으려 시도하면서 발생한 무력 충돌로, 사가 천황이 이를 진압하며 승리하였다. 이 사건의 결과로 천황의 비서 기관인 구로도도코로가 설치되었고, 천황 중심의 중앙 집권 체제가 한층 더 강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서유럽에서는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 대제가 제국의 통치 막바지에 이른 시기였다. 810년 덴마크의 고트프리트 왕이 프랑크 왕국의 북부 영토를 위협하였으나, 그가 피살되면서 후계자 헴밍에 의해 프랑크 왕국과 덴마크 사이의 평화 조약이 맺어지게 되었다. 이는 카롤루스 대제 사후 제국이 직면할 외부 위협을 잠시 늦추는 역할을 하였다.
이슬람 세계의 아바스 왕조에서는 칼리파 알 아민과 그의 형제 알 마문 사이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선대 칼리파 하룬 알 라시드가 사후 제국을 형제들에게 나누어 맡긴 것이 화근이 되어, 810년을 전후로 하여 제국 전역은 내전의 전조 현상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내부 분열은 이슬람 황금기 속에서도 정치적 불안정성을 노출시킨 중요한 지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