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항

최항(崔沆, ?~1257)은 고려 후기 무신정권의 제3대 집권자로, 최우의 서자이자 최충헌의 손자이다. 본래 승려의 몸으로 송광사에 들어가 만전(萬全)이라는 법명으로 활동하였으나, 후계자가 없던 아버지 최우의 부름을 받아 1248년 환속하였다. 이후 이름을 항으로 고치고 좌승선 등의 관직을 거치며 권력 승계를 준비하였다. 1249년 최우가 사망하자 가문의 사병 조직과 정방을 장악하며 무신정권의 수장 자리에 올랐다.

집권 초기 최항은 자신의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해 대대적인 숙청을 감행하였다. 그는 계모인 대씨 부인과 그녀의 전남편 아들들을 유배 보낸 뒤 살해하였으며, 자신을 지지하지 않거나 정적으로 간주되는 인물들을 가혹하게 처벌하였다. 이 과정에서 최우 시기의 온건한 정치 기조와 달리 강압적이고 독단적인 통치를 일삼아 관료들의 반발과 민심의 이반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그는 인사 행정 기구인 정방을 통해 관리들의 임면권을 독점하며 왕권을 무력화하고 무신정권의 독재 체제를 공고히 하였다.

대외적으로는 몽골의 침략에 맞서 강화도 천도 상태를 유지하며 항전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몽골은 지속적으로 고려 국왕의 출륙(出陸)과 개경 환도를 요구하였으나, 최항은 이를 거부하고 강화도의 요새화를 강화하였다. 비록 전쟁으로 인해 국토가 황폐해지고 백성들의 삶이 궁핍해졌으나, 그는 무신정권의 존립을 위해 강화도를 고수하는 전략을 포기하지 않았다. 또한 아버지 최우가 시작한 팔만대장경 판각 사업을 마무리하며 불교의 힘을 빌려 국난을 극복하려는 태도를 보이기도 하였다.

최항은 1257년 병사할 때까지 약 8년간 권좌를 지켰다. 그가 사망한 후 권력은 그의 서자인 최의에게 승계되었으나, 최항 시기부터 누적된 정권 내의 불만과 모순은 결국 최씨 무신정권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최씨 정권의 전성기를 지나 쇠퇴기로 접어드는 시점의 인물로 평가받으며, 강력한 사병 집단과 인사권을 바탕으로 고려 조정을 실질적으로 지배했던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