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년

249년은 3세기의 중반에 해당하는 해로, 서력기원(AD)을 따른다. 중국에서는 삼국시대 위나라의 실질적 통치권이 조씨 가문에서 사마씨 가문으로 넘어가는 결정적인 정치적 변동이 발생한 해이며, 로마 제국에서는 군인 황제 시대의 혼란 속에서 황위가 교체되는 격변이 있었다. 한반도에서는 삼국시대 초기로 고구려, 백제, 신라가 각자의 국가 체제를 정비하고 대외적으로 세력을 확장하거나 방어하던 시기였다.

중국 역사, 특히 삼국시대 후반부에서 249년은 '고평릉의 변'이 일어난 해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위나라의 태부 사마의는 대장군 조상 일파가 황제 조방을 모시고 고평릉으로 제사를 지내러 간 틈을 타 낙양에서 쿠데타를 일으켰다. 사마의는 무력을 동원해 성문을 닫고 조상에게 반역의 죄를 뒤집어씌웠으며, 결국 조상과 그 측근들을 처형하고 조정의 전권을 장악했다. 이 사건은 위나라 황실의 권위가 완전히 추락하고 훗날 사마씨가 세우는 진나라(서진)가 건국되는 실질적인 기점이 되었다.

위나라 내부의 정변은 촉나라에게는 기회로 작용했다. 촉한의 대장군 강유는 위나라의 혼란을 틈타 북벌을 감행했다. 강유는 국산(麴山)에 두 개의 성을 축조하고 아문장군 구안과 이흠에게 이를 지키게 하며 옹주 지역을 압박했다. 비록 위나라의 곽회와 진태의 대응으로 인해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철수했으나, 이는 제갈량 사후 강유가 주도하는 북벌이 본격화되는 시점의 주요 군사 작전 중 하나로 기록된다.

한반도의 상황을 살펴보면, 신라에서는 점해 이사금 3년, 고구려는 중천왕 2년, 백제는 고이왕 16년에 해당한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따르면 249년 여름 4월, 왜국(倭)의 병력이 신라를 침범하여 서불한 우로(于老)가 이를 막기 위해 출전했다가 전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다만 우로의 죽음에 대해서는 다른 해(253년)의 기록과 혼재되어 있어 학계의 해석이 분분하나, 당시 신라가 해안 지역을 통해 들어오는 왜구의 약탈로 인해 군사적 긴장 상태에 있었음은 분명하다. 고구려는 동천왕의 뒤를 이은 중천왕이 즉위 초기의 기반을 다지는 시기였으며, 백제는 고이왕의 통치 하에 관등제 정비 등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고 있었다.

유럽의 로마 제국에서는 필리푸스 아라브스 황제의 통치가 끝나고 데키우스가 새로운 황제로 등극했다. 도나우 강 전선의 사령관이었던 데키우스는 군대의 추대를 받아 황제를 칭하고 이탈리아로 진격하여, 베로나 전투에서 필리푸스 아라브스를 격파하고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데키우스의 즉위는 로마 제국의 전통 종교를 부흥시키려는 시도로 이어졌으며, 이는 곧 기독교에 대한 로마 제국 차원의 최초의 조직적이고 대대적인 박해로 연결되었다. 이 시기 로마는 잦은 황제 교체와 이민족의 침입으로 인한 '3세기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