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수(1924)

최용수(1924~2005)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이다. 1924년 경상남도 함안에서 태어났으며, 일제강점기 말기 학생 신분으로 항일 운동에 투신하였다. 그는 경성법학전문학교 재학 중이던 1944년,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과 함께 일본의 학병 징집을 거부하고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비밀 결사를 조직하여 활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8.15 광복을 맞아 출옥하였다.

해방 이후 최용수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법조계에 발을 들였다. 제3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하여 판사로 재직하며 법률적 전문성을 쌓았으나, 건국 초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기틀을 잡는 데 기여하고자 정계에 입문하였다. 독립운동가 출신의 법조인이라는 이력은 그가 향후 정치 활동을 전개하는 데 있어 중요한 명분과 자산이 되었다.

그의 본격적인 정치 활동은 1960년 제5대 민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경상남도 함안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그는 주로 야당 정치인의 길을 걸으며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의회 민주주의와 헌정 질서를 수호하는 데 앞장섰다. 1978년에는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소속으로 당선되어 다시 한번 국회에 입성하였으며, 당내 중앙상임위원회 위원 등 주요 당직을 역임하며 야권의 중진으로 활동하였다.

최용수는 일관되게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정치를 지향했으며, 독립운동가 세대와 민주화 운동 세대를 잇는 가교 역할을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부는 그의 독립운동 공훈을 기려 1977년에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으며,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하였다. 그는 정계 은퇴 이후에도 원로로서 사회의 여러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며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2005년 7월 10일 향년 81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그의 삶은 조국의 독립을 위한 투쟁에서 시작하여 현대 한국의 법치주의 확립과 의회 정치 발전에 헌신한 여정으로 요약된다. 그의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학생 독립운동가 출신 정치인의 전형적인 사례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