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록(1928~2010)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시기 권력의 핵심부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함경북도 연사군 출생으로 알려져 있으며, 만주 지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6.25 전쟁 당시 비행사로 참전하여 전공을 세웠으며, 이를 바탕으로 북한 공군의 주요 보직을 거치며 군부 내 입지를 다졌다.
그는 1970년대 후반 공군 사령관에 임명된 이후 장기간 공군을 지휘하였다. 1980년 조선노동당 제6차 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 및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며 정치적 위상을 확립하였다. 1995년에는 인민군 대장에서 차수로 승진함과 동시에 군 내부의 정치사업을 총괄하는 총정치국장에 임명되었는데, 이는 그가 군부의 실질적인 실세로 부상했음을 상징하는 인사였다.
김정일의 선군정치 노선 아래 조명록은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직을 맡아 국가 권력 서열 2위의 자리를 굳건히 하였다. 그는 김정일의 가장 신임받는 최측근 중 한 명으로서 군부의 충성을 유도하고 체제를 수호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특히 인민군 총정치국장으로서 군 내 당 조직을 관리하며 군대에 대한 노동당의 통제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조명록은 대외 외교 분야에서도 역사적인 행보를 남겼다. 2000년 10월, 그는 김정일의 특사 자격으로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하여 빌 클린턴 대통령과 회담하였다. 이는 북한 고위급 인사로서는 사상 최초의 백악관 방문이었으며, ‘조미 공동코뮈니케’ 발표를 이끌어내며 북미 관계 개선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역할을 하였다. 당시 그는 군복 차림으로 백악관을 방문하여 국제사회의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말년에는 만성 신부전증 등 건강 악화로 인해 대외 활동이 급격히 줄어들었으나, 사망 직전까지 고위직을 유지하며 원로로서 예우를 받았다. 2010년 11월 6일, 82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북한 당국은 그의 장례를 국장으로 치렀으며, 김정일을 위원장으로 하는 대규모 장의위원회를 구성하여 그의 공적을 높이 평가하였다. 그의 유해는 평양 대성산혁명열사릉에 안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