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용(鄭燦龍)은 대한민국의 시민운동가이자 전직 정무직 공무원으로, 참여정부 시절 인사 행정의 기틀을 마련한 핵심 인물이다. 1950년 전라남도 영암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한 뒤, 거창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며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9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며 광주 YMCA 사무총장을 역임하는 등 오랫동안 지역 시민운동의 현장을 지켰다. 이 시기 그는 시민들의 자치 역량을 강화하고 민주적 가치를 확산시키는 데 주력하며 호남 지역 시민사회의 대표적인 리더로 성장했다.
2003년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정찬용은 초대 대통령비서실 인사보좌관(차관급)으로 발탁되어 공직에 입문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학연, 지연, 혈연 등 연고주의에 얽매이던 기존의 인사 관행을 타파하고자 했으며, 정찬용은 이러한 국정 철학을 구현할 적임자로 꼽혔다. 그는 공직 사회에 만연했던 밀실 인사를 배제하고, 추천과 검증 단계를 체계화한 '시스템 인사'를 도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후 직제 개편에 따라 대통령비서실 인사수석비서관으로 승진하여 참여정부 전반기의 인사를 총괄했다.
공직 재임 기간 동안 그는 고위 공직자 인사 검증 매뉴얼을 정비하고 인사추천위원회를 활성화함으로써 투명하고 공정한 인재 등용 절차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때로는 파격적인 인재 발탁을 통해 관료 사회에 긴장감을 불어넣기도 했으나, 이 과정에서 정치권과의 갈등이나 검증 부실 논란 등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행정사에서 인사를 권력의 시혜가 아닌 시스템에 의한 과학적 행정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려 시도했다는 점은 그의 주요한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2005년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다시 시민사회 영역으로 복귀하여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그는 인재육성아카데미 등을 통해 청년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 활동에 매진했으며, 2010년 지방선거에서 광주광역시장 예비후보로 나서는 등 현실 정치 참여를 모색하기도 했다. 또한 노무현 재단 광주지역위원회 상임대표를 맡으며 민주 진영의 통합과 지역 발전을 위한 목소리를 꾸준히 냈다.
정찬용은 단순한 행정가를 넘어, 평생을 시민운동의 가치와 원칙을 현실 정치 및 행정에 접목하려 했던 실천가로 정의된다. 그는 권력의 핵심부에 머물면서도 특유의 탈권위적이고 소탈한 태도를 유지하려 노력했으며,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연고주의를 극복하고 합리적인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기여하고자 했다. 이러한 그의 행보는 한국의 인사 행정 및 시민운동 역사에서 중요한 사례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