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교

정소교(鄭素敎, 1840~1911)는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기의 문신이자 정치인이다. 본관은 연일(延日)이며, 자는 치삼(致三)이다. 그는 격변하는 구한말의 정세 속에서 고위 관직을 두루 거쳤으나, 정미칠적(丁未七賊)의 한 사람으로서 국권을 일본에 넘기는 데 가담한 대표적인 친일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1872년(고종 9)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며 본격적인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홍문관 수찬, 승정원 우승지, 이조 참의 등 중앙 요직을 두루 거치며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1894년 갑오개혁 당시에는 공조판서와 예조판서 등을 지냈으며, 행정 실무와 의례 분야에서 역량을 발휘하며 고종의 신임을 얻기도 하였다.

대한제국 수립 이후에는 법부대신, 학부대신 등 내각의 핵심 직책을 역임하였다. 그는 근대적인 법제 개편과 교육 제도 정비 과정에 참여하였으나, 점차 일본의 영향력이 강화되는 흐름 속에서 일제의 압력에 협조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 시기 그는 단순한 행정 관료의 역할을 넘어 일제의 침략 정책을 옹호하고 실행하는 정객으로 변모하였다.

1907년 이완용 내각의 법부대신으로 재임하던 중, 일제의 강요로 체결된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에 찬성하며 서명하였다. 이 조약은 대한제국의 행정권과 공무원 임면권을 일본 통감에게 양도하여 사실상 국권을 상실하게 만든 굴욕적인 협약이었다. 정소교는 이를 주도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 정부로부터 훈일등 태극장을 받는 등 부귀와 영달을 누렸다.

경술국치 이후인 1910년에는 조선귀족령에 따라 일제로부터 남작(男爵) 작위를 받았으며, 은사금으로 2만 5천 원을 수령하였다. 이러한 매국 행적으로 인해 그는 해방 이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수록되었으며, 한국 근현대사에서 민족을 배신하고 일제의 식민 지배를 도운 대표적인 인물로 비판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