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석(李漢奭, 1846~1928)은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의병장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공필(公弼), 호는 소남(少南)이다. 그는 경상북도 영덕 출신으로, 을사늑약 이후 국권이 침탈당하는 위기 속에서 구국을 위해 무장 투쟁에 나선 인물이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이한석은 망국의 한을 품고 의병을 일으킬 결심을 하였다. 그는 1906년 영덕 지역에서 신돌석(申乭石) 의병장의 부대에 합류하여 활동하였으며, 이후 독자적인 의병 부대를 조직하여 경상도 일대를 중심으로 항일 유격전을 전개하였다. 그의 부대는 주로 일본군의 거점을 습격하거나 통신 시설을 파괴하는 등 일제의 행정 및 군사 기능을 방해하는 데 주력하였다.
이한석은 영해, 영덕, 진보 등지에서 일본군 및 경찰과 수차례 교전을 벌이며 전과를 올렸다. 특히 지형지물을 활용하여 소규모 부대로 일본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기습 공격을 감행하는 전략을 구사하였다. 그러나 지속적인 일제의 토벌 작전으로 인해 의병 활동은 점차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고, 결국 그는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러야 했다.
출옥 이후에도 이한석은 독립에 대한 신념을 굽히지 않았으며, 향리에서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데 힘썼다. 1928년 서거할 때까지 조국의 광복을 염원하며 절개를 지켰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77년 건국포장을,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한석의 투쟁은 경상도 지역 의병 운동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크다. 지역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전개된 그의 항일 투쟁은 영남 지역 독립운동의 기반이 되었으며, 후대인들에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희생정신을 일깨워주는 귀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