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정(李愚貞, 1923~2002)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여성운동가이자 기독교 신학자, 사회운동가, 정치인이다. 한국 기독교 장로회 소속의 신학자로서 한국 여성신학의 이론적 기초를 다진 선구자이자, 군사 독재 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과 여성 인권 운동의 최전선에서 활약한 한국 여성 운동의 대모로 평가받는다. 그는 상아탑에 머무르는 학자가 아니라 학문적 신념을 사회적 실천으로 옮긴 행동가였으며, 평생을 소외된 민중과 여성의 권익 향상을 위해 헌신했다.
1923년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난 이우정은 조선신학교(현 한신대학교)를 졸업하고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 에마누엘 칼리지에서 수학했다. 1953년부터 한신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기독교 윤리학을 가르쳤고, 서구의 여성신학을 한국의 독특한 사회적, 역사적 상황에 맞게 접목하여 '한국적 여성신학'을 정립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전통적인 성서 해석에 내재된 가부장적 요소를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역사 속에서 고난받는 민중과 여성의 해방을 신학의 핵심 과제로 삼았다. 이러한 그의 신학적 통찰은 단순한 이론 연구를 넘어 그가 훗날 인권 운동과 민주화 투쟁에 투신하는 강력한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
1970년대 유신 독재가 시작되면서 이우정은 본격적으로 재야 민주화 운동과 여성 운동의 중심에 섰다. 한국교회여성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1973년 일본인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기생 관광' 반대 운동을 주도해 한국 사회의 성 상품화 문제를 국제적으로 공론화했다. 1976년에는 윤보선, 함석헌, 김대중 등과 함께 3.1 민주구국선언에 참여했다가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되었으며, 이로 인해 교수직에서 해직되기도 했다. 이후에도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공동의장, 한국여성단체연합 초대 회장 등을 맡아 구속된 민주 인사들의 석방과 고문 반대, 노동자 및 여성의 인권 회복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다.
1990년대 초반, 이우정은 재야 운동의 성과를 제도권 정치로 확장하기 위해 정계에 입문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의 전국구(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되어 국회에 진출했다. 국회 노동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며 여성 운동 진영의 숙원이었던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성폭력 특별법)' 제정을 주도했고, 남녀고용평등법 개정과 가족법 개정 등 여성의 법적 지위를 향상하고 성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입법 활동에 매진했다. 이는 거리에서의 투쟁을 실제 법과 제도로 안착시킨 중요한 성과로 기록된다.
정계 은퇴 후에도 통일맞이 늦봄 문익환 목사 기념사업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평화 통일 운동에 힘썼고, 빈민 여성들을 위한 복지 활동 등 사회 원로로서의 책무를 다했다. 2002년 5월 30일 향년 80세를 일기로 별세하였으며, 민주주의와 여성 인권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사후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다. 이우정은 보수적인 기독교계와 남성 중심의 한국 사회 질서 안에서 여성의 주체성을 확립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평생을 바친 한국 현대사의 거목으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