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에이버리 비숍(William Avery Bishop, 1894년 2월 8일 ~ 1956년 9월 11일)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활약한 캐나다의 전투기 조종사이자 공군 에이스이다. '빌리 비숍'이라는 애칭으로도 잘 알려진 그는 전쟁 기간 동안 공식적으로 총 72대의 적기를 격추하여 대영제국 소속 조종사 중 에드워드 매녹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격추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캐나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군인 중 한 명으로 손꼽히며, 캐나다 항공 발전의 선구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비숍은 캐나다 온타리오주 오언사운드에서 태어나 왕립 캐나다 군사대학(RMC)에 입학하며 군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처음에는 기병대 장교로 임관하여 유럽 전선으로 향했으나, 전선의 진흙탕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공중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1915년 영국 왕립 비행단(RFC)에 관측수로 전입한 후, 이듬해 조종사 훈련을 마치고 전투 조종사가 되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전공은 1917년 6월 2일 새벽에 감행한 독일군 비행장 단독 기습 공격이다. 비숍은 홀로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이륙하려던 독일 전투기들을 격추하고 무사히 귀환했다. 이 공로로 그는 영국 최고의 무공 훈장인 빅토리아 십자 훈장(VC)을 수여받았다. 이후 그는 '플라잉 폭스'라는 별명을 얻으며 승승장구했고, 수훈장(DSO)과 군사십자장(MC) 등 수많은 훈장을 휩쓸며 연합군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비숍은 민간 항공 분야에서 활동하다가,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다시 군으로 복귀했다. 그는 캐나다 왕립 공군(RCAF)의 공군 중장(Air Marshal) 계급에 임명되어 주로 신병 모집과 홍보 활동을 담당했다. 그의 존재는 캐나다 청년들이 공군에 자원하는 데 큰 동기부여가 되었으며, 캐나다가 대규모 항공 훈련 계획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 기여했다.
전쟁 후 비숍은 건강 악화로 은퇴하여 1956년 플로리다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전공 중 일부, 특히 빅토리아 십자 훈장을 받은 단독 기습 작전은 목격자가 없다는 이유로 훗날 일부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진위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비숍은 여전히 캐나다의 국가적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토론토 시내에 위치한 빌리 비숍 토론토 시티 공항은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