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용석(元容奭, 1906년~1989년)은 대한민국의 관료이자 정치인이다. 호는 연암(蓮庵)이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이다. 일제강점기 경성고등공업학교 토목과를 졸업한 후 조선총독부 기수로 근무하며 실무 경험을 쌓았다. 해방 이후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에 참여하여 행정가와 정치인으로서 국가 기틀을 마련하는 데 기여하였다.
정계에 입문한 그는 제2대, 제3대, 제4대 국회의원을 지내며 입법 활동을 전개하였다. 자유당 소속으로 활동하며 정당 내 주요 직책을 역임하였고, 특히 경제와 산업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하였다. 국회 의정 활동을 통해 전후 복구 사업과 국가 기간 산업 확충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데 주력하였다.
1960년대 박정희 정부 시기에는 행정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아 요직을 두루 거쳤다. 1963년 제4대 경제기획원 장관에 임명되어 국가 경제 개발 계획의 수립과 집행을 진두지휘하였다. 이어 농림부 장관과 무임소 장관을 역임하며 식량 증산과 농촌 근대화 사업에 힘썼다. 특히 울산공업단지 건설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대한민국 중화학 공업의 토대를 닦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공직 퇴임 이후에도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한국항만협회 회장 등을 지내며 경제 및 산업계의 원로로서 활동하였다. 기술 관료 출신 정치인으로서 전문 지식과 행정 실무를 결합하여 국가 발전을 이끈 인물로 평가받는다. 1989년 향년 83세를 일기로 사망하였으며, 생전의 공로를 인정받아 청조근정훈장 등을 수훈하였다.
원용석은 한국 현대사에서 기술적 전문성과 정무적 감각을 동시에 갖춘 인물로 꼽힌다. 전후 폐허가 된 국가 경제를 재건하고, 1960년대 본격적인 경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추진력과 전문성은 한국 산업화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그의 생애는 한국의 산업 구조가 농업에서 공업 중심으로 전환되던 격변기의 국가 행정 모델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