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재산 사건은 2011년 대한민국 공안 당국에 의해 적발된 대규모 지하당 간첩단 사건이다. 북한의 대남 공작 부서인 225국(현 문화교류국)의 지령을 받아 결성된 지하 조직 '왕재산'이 국내 정세 및 군사 기밀을 수집하여 북측에 보고한 것이 사건의 핵심이다. 이 사건은 1990년대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사건 이후 최대 규모의 간첩단 사건으로 평가받으며 당시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조직 '왕재산'은 2001년경 김덕용을 중심으로 결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결과에 따르면, 총책 김덕용은 1990년대 초 북한에 밀입북하여 김일성으로부터 '왕재산'이라는 조직 명칭을 직접 하사받았으며, 이후 장기간에 걸쳐 남한 내 지하 조직을 구축했다. 이들은 인천 지역을 주요 거점으로 삼아 지역 정치인, 노동계 인사,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포섭하여 하부 조직을 구성하고 세력을 확장하려 시도했다.
이들의 주요 활동은 국가 기밀 유출과 정세 보고였다. 왕재산 조직원들은 스테가노그래피(Steganography)와 같은 고도의 암호화 기술을 사용하여 북한에 정기적으로 보고를 올렸다. 특히 인천 지역의 공항, 항만, 주요 군사 시설의 배치도와 유사시 파괴 계획 등을 수립한 혐의를 받았으며, 대한민국의 선거 결과와 정당 내부 동향 등 정치적 정보를 분석하여 북측에 전달함으로써 대남 공작의 기초 자료로 활용하게 했다.
2011년 7월 국가정보원과 검찰은 총책 김덕용을 포함한 핵심 인물들을 국가보안법 위반(반국가단체 결성, 목적수행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들은 혐의를 부인하며 수사 당국의 조작이라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압수된 암호 문건과 통신 기록 등의 증거를 바탕으로 이들의 이적 행위와 북한 연계성을 인정했다. 2013년 대법원은 총책 김덕용에게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을 확정하는 등 주요 가담자들에게 실형을 최종 선고했다.
왕재산 사건은 남한 내 친북 지하 조직의 실체가 구체적인 물증과 함께 드러난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되었다. 수사 과정에서 확보된 방대한 분량의 지령문과 보고서는 북한의 대남 공작 방식이 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해 현대화되었음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이 사건은 국가보안법의 적용 범위와 수사 절차상의 공정성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의 이념적 갈등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